文 "여성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 보내드리고 있다"..김대중 전 대통령 '동지' 이희호 여사 별세 - 2019. 6. 11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가 10일 오후 11시37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97세였는데요.
고(故)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부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김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이희호 남편'이라 칭할 만큼 둘의 관계는 부부라기보다 '동지' '동업자'에 가까웠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망명하던 시절인 1983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강연에서 이같이 말하기도 했답니다.
“아내가 없었더라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내가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내 아내 덕분이고, 나는 이희호의 남편으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이희호는 1922년 서울에서 6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어머니의 교육열에 힘입어 이희호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1936년 진학했는데요.
졸업 후 이화여전(이화여자대학교)을 다니던 이희호는 2년 다닌 뒤 강제졸업을 당했습니다. 이후에 이화여대에 편입을 요청했지만 실패하고 1946년 서울대 영문과에 입학했습니다. 서울대 재학 당시 이희호의 별명은 독일어 중성 관사인 '다스(das)'였다고 합니다. 행동이 여성 같지 않고 중성적이었다는 의미였는데요.
당시 이희호는 기독교청년학생운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각 대학의 학생 리더들이 만든 '면학동지회'에도 참여하면서 사회운동에 발을 들였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피난을 갔던 이희호는 이곳에서 대한여자청년단을 만들었는데요. 이희호는 이 무렵부터 여성이 주체가 되는 사회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1952년에는 대한여자청년단에 이어 여성문제연구원도 창립했습니다.
서울대생 모임이었던 면학동지회 역시 1951년 부산에서 다시 회동했는데요. 한 달에 한 번 만나던 이 모임에서 이희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처음 만났습니다.
◆이희호 여사, 면학동지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처음 만나
195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1958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이희호는 모교였던 이화여대에 둥지를 틀고 기독교사회사업학과에서 사회학 원서 강독을 했습니다. 대학교수를 희망했던 이희호는 YWCA(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 측으로부터 총무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는데요. YWCA에서 중추적인 활동을 하며 사회운동가로의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김대중을 다시 만난 건 1961년이었습니다. 김대중은 당시 첫 부인이던 차용애를 먼저 떠나보낸 상태였는데요.
5•16 쿠데타로 의원직을 잃은 '정치 실업자' 김대중과 YWCA 총무였던 이희호는 주로 정치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졌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 '동지애'가 싹텄다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김대중과 이희호는 1962년 결혼했습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이 재혼인 데다가 5•16 군사 쿠데타로 정치생명을 잃었기에 주변에서 결혼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정치 낭인이었던 김대중의 앞길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김대중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했는데요. 결혼식을 마치고 열흘 뒤 김대중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갈 정도였습니다. 평생을 김대중의 정치적 동반자로 산 이희호의 고난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생을 김대중 '정치적 동반자'로서 살았던 이희호
정치인 김대중의 뒷바라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이희호는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은 접게 됩니다. 이희호가 기억하는 가장 고된 선거는 1967년 총선이었습니다. 주위에서는 지방 지역구는 부정선거가 이뤄지기 쉽다며 김대중의 목포 출마를 만류했지만, 결국 김대중은 목포 출마를 결심했고 이희호도 나서 지원했습니다.
1970년 김대중은 처음으로 대선에 나갈 결심을 했습니다. 40대 기수로 나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기는 날이 갈수록 올라갔는데요. 부산 연설에는 50만 명의 시민이 몰렸습니다. 김대중이 하루에 열 차례가 넘는 연설을 하면 이희호 역시 전국의 장터와 거리를 돌며 남편을 도왔습니다. 이희호는 찬조연사로 나서 시민들에게 "제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고 호소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4월18일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열린 김대중의 유세에는 100만 인파가 모여들었지만, 결국 제7대 대선은 박정희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김대중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됐는데요.
1972년 유신 쿠데타가 시작되자 야당 의원에 대한 본격적인 고문이 시작됐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 치료를 위해 일본 도쿄에 머물던 김대중은 10월 유신 소식을 듣고 귀국을 포기한 뒤 해외 망명을 결정했습니다. 이희호는 남편에게 편지로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국내 민심을 전했는데요. 엄혹한 상황에서도 남편의 투쟁 의지를 북돋았습니다. 그는 편지에 “현재로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으니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적었습니다.
1973년에는 김대중 납치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김대중은 일본 도쿄에서 괴한 5명에게 납치당해 배로 끌려가 바다에 떨어져 죽을뻔한 위험을 겪습니다. 다행히 미국 정부에 배의 위치가 탄로나 김대중은 살아돌아올 수 있었는데요. 이희호는 매일 가슴을 졸이는 날들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초 속에서도 남편에게 포기를 권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절 이희호를 붙든 건 간절한 신앙심이었는데요.
◆김대중 수차례 생사고비 넘겨…거의 매일 가슴 졸이며 살았던 이희호
1979년 박정희가 암살돼 기나긴 군부독재 시절이 저물었지만, 신군부의 등장으로 김대중은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휘말리게 됐습니다. 신군부가 김대중이 민주화운동가 20여 명과 북한의 사주를 받고 내란을 획책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이 당시 김대중에게는 사형이 선고됐습니다. 장남 김홍일까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고초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희호는 눈물을 삼키며 남편과 아들의 한복 수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김대중에 대한 구명운동이 벌어졌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까지 나서 서한을 보냈습니다. 결국 1981년 김대중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습니다. 김대중의 투옥생활 동안 이희호는 일기를 쓰듯 김대중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1982년 12월 출감 때까지 그가 보낸 편지만 649통에 달했는데요.
이희호가 할 수 있는 일은 헌신적인 옥바라지였습니다. 쉼없이 독서를 하는 김대중을 위해 각종 책을 사식 넣듯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김대중이 교도소에 수감됐던 2년6개월 동안 이희호가 김대중에 보낸 책만 600권에 달했는데요.
1982년 김대중은 다시는 국내에서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탄원서를 쓰고 2년간 미국 망명길에 오르게 됩니다. 이때 이희호도 따라나섰는데요.
하지만 1984년 귀국한 김대중은 결국 다시 정치에 뛰어들게 됩니다. 12대 총선에서 김대중의 귀국으로 신한민주당이 돌풍을 일으켜 제1야당이 됐습니다. 이후 김대중은 김영삼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 의장을 맡아 재야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87년부터 김대중은 연이어 세 차례 대선에 도전합니다. 1992년 세 번째 도전에서는 김영삼에게 패배하면서 정계은퇴를 선언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요청으로 3년만에 정치를 재개했습니다. 이희호는 김대중의 정치 재개를 말렸지만 결국 설득당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대중은 1997년 3전4기 끝에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3전4기 끝에 대통령 당선된 김대중…영부인으로서 새로운 삶 시작한 이희호
이후 이희호는 영부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2000년 6월15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도 이희호는 함께 했는데요. 이희호는 당시 장상 이화여대 총장, 성인숙 청와대 제2부속실장 등과 함께 북측 여성 인사들과 남북 여성좌담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여성의 사회 참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2001년 여성부가 처음으로 들어섰고, 한명숙이 여성 최초로 총리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희호의 역할이 상당했다는 평가입니다.
2002년 5월 이희호는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의장국 대표로 임시의장을 맡은 이희호는 여성 최초로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김대중이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그와 함께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2008년에는 김대중과 함께 미국을 방문했는데요. 김대중은 이때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햇볕정책이 성공의 길이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2008년 11월 이희호는 자서전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를 펴냈습니다. 제목을 지어준 이는 김대중이었습니다. 그해 11월11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김대중은 이희호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감사인사를 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2009년 노무현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김대중의 병세는 급격히 안 좋아졌습니다. 김대중 장례는 이희호 뜻대로 국장으로 치러졌는데요. 국회의사당에 빈소가 차려졌습니다.
입관 전날 이희호는 김대중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 용서하며 아껴주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의 품안에서 편히 쉬시기를 빕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을 뜨거운 사랑의 품안에 편히 쉬시게 하실 것입니다. 어려움을 잘 감내하신 것을 하느님이 인정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줄 믿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2009년 8월23일 국회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이희호는 단상에 올라 국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희호는 2009년 9월10일부터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에 선임됐는데요.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세상을 떠나자 이희호는 정부에 방북 신청을 했습니다. 당시 상주 김정은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北 조문단 파견할까? '조문정치' 벌써부터 관심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이희호가 별세함에 따라 북한이 조문단을 보내올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과거에도 북한의 조문단 파견이 단절된 남북대화를 이어가는 계기를 마련한 바 있어 조문단 파견 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될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한 주요 남측 인사의 장례에 조문단을 파견해왔답니다.
만약 이번에도 북한이 중량급 인사가 포함된 조문단을 파견할 경우 이를 계기로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조문정치가 이뤄질지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최근 정부가 북한과 대화 기회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어 조문단이 방남한다면 어떻게든 면담 등을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과거처럼 대남사업을 담당하는 통전부장이 조문단에 포함될 경우 카운터파트인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접촉 가능성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김영철 전 통전부장의 후임으로 아직 베일에 가려진 장금철 통전부장의 데뷔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데요.
특히 이 여사가 생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여준 예우를 고려하면 조문단 파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입니다.
다만 북한이 남한에 한미공조가 아닌 북남공조를 하라고 연일 압박하는 상황에서 조문단 파견을 부담스러워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조문단 파견 자체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가늠하는 행위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文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
핀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가 별세한 것과 관련해 "부디 영면하시길 바란다"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SNS에 올린 글에서 "저는 지금 헬싱키에 있다. (국내에) 계신 분들께서 정성을 다해 모셔주시기 바란다"고 언급했는데요.
그는 "이 여사님이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러 갔다. 조금만 더 미뤄도 좋았을 텐데, 그리움이 깊으셨나보다"라며 "평생 동지로 살아오신 두 분 사이의 그리움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봤다"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다"고 덧붙였답니다.
이어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제 1세대 여성 운동가다.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해 활동했고, YWCA 총무로 여성운동에 헌신했다"며 "민주화운동에 함께하셨을 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여성부 설치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하실 정도로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고 밝혔던 것입니다.
3일 방송 예정인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는 ‘ㄱㄴ춤’으로 전 국민을 들썩이게 했던 가수 박남정이 자신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딸 박시우와 함께 상담소 문을 두드린다. 본격 상담에 앞서 박남정은 첫째 딸 시은은 걸그룹 ‘STAYC’의 메인 보컬을, 둘째 딸 시우는 연극영화과 대입 5관왕임을 밝히며 두 딸의 근황을 소개한답니다.
이어 첫째 딸 ‘STAYC’ 시은의 제보 영상이 공개된다. 시은은 “시우가 스스로를 극으로 몰아넣는다”고 걱정을 토로하며 “시우가 극단적으로 수면욕과 식욕을 배제하면서까지 독하게 입시에만 몰두했다”고 증언한다. 아빠 박남정 역시 시우에 대해 “너무 독할 때가 있어 아버지로서 걱정된다”며 고민의 심각성을 더한다.
영상을 본 시우는 예고 재학 시절, 입시를 준비하며 독하게 공부했던 일화를 털어놓는다. 쉬는 시간에도 틈틈이 조용한 탈의실에서 공부하는 건 기본, 학원을 마치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첫차를 타고 등교하거나 잠이 부족해 지하철에서 쪽잠을 자다 종점에 가는 등 극한으로 자신을 몰아간 일화를 밝혀 상담소 식구들을 놀라게 한다. 이에 오은영 박사는 시우에게 독하게 공부한 이유를 물었고, 시우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1등에 집착하게 됐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에 오은영 박사는 ‘나를 움직이는 힘’인 ‘동기’를 언급하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내적 동기’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는 ‘외적 동기’가 있음을 설명한다. 이를 들은 시우는 ‘박남정의 딸’이라는 꼬리표와 ‘아이돌 언니’의 존재가 큰 외적 동기로 다가왔음을 털어놓는데. 유심히 듣던 오은영 박사는 왜 유독 언니가 외적 동기로 다가온 것인지 물으며 시우의 내면 분석에 돌입한답니다.
골똘히 생각하던 시우는 연습생 생활, 드라마 촬영, 공부까지 뭐든 잘 해냈던 언니처럼 되고 싶었다고 대답한다. 이에 오은영 박사는 ‘닮고 싶은 사람을 보며 기준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하며 형제·자매 간 본능적으로 생기는 질투 심리인 ‘카인 콤플렉스’를 언급, 마음속 언니에 대한 질투심은 없었는지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머뭇거리던 시우는 “먼저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던 언니에게 부모님의 관심과 걱정이 쏠렸던 것이 부러웠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놓는다. 이에 오은영 박사는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할 경우 스스로 불안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자신만의 내적 동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한편, 이날 상담소에서는 “아빠가 너무 극성”이라는 두 딸의 고민도 공개된다. “아빠가 나이 들면서 잔소리가 더 많아졌다”는 시은의 폭로를 시작으로, 시우 또한 친구들과 여행 갈 때 아빠가 실제로 따라왔었던 일화를 공개해 모두를 놀라게 한답니다.
이어 박남정은 “자신의 가정 철학은 아이들이 집을 천국으로 느끼게끔 해주는 것”이라며, 여태 딸들에게 큰소리 한 번 낸 적 없음을 밝힌다. 이에 오은영 박사는 박남정이 자녀들을 위한 24시간 대기조, 일명 ‘용수철 아빠’임을 포착하고 딸들이 힘들 만한 상황이면 무조건 달려가는 박남정에게 부모로서의 ‘권위’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한다.
그러나 박남정은 권위 뿐만 아니라 집안 내 ‘존재감’이 없다며 딸들에게 섭섭함을 토로한다. 이에 오은영 박사는 박남정에게 권위가 없는 원인을 파헤치고자 박남정의 아버지에 대해 질문을 이어간다. 그러자 박남정은 아버지의 존재를 모른다고 답하며, 유년 시절 ‘선명회 합창단’ 단체 생활로 인해 터놓고 얘기할 ‘남자 어른’이 없었을 뿐더러, 위계질서가 강한 남자 선배들과 함께 자랐다고 고백한다. 오은영 박사가 본 박남정이 권위 없는 아빠가 된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증이 쏠리고 있습니다.
'심신 딸' 벨→'박남정 딸' 시은, 가수 DNA 물려받은 2세 - 2023. 6. 8
부모의 끼를 물려받은 가수 2세들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가수 심신의 딸 심혜원은 신인 걸 그룹 키스 오브 라이프의 멤버 벨로 오는 7월 가요계 데뷔를 앞두고 있다. 키스 오브 라이프 소속사 S2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지난 7일 스타뉴스에 "벨이 심신의 딸이 맞다"고 밝혔다.
키스 오브 라이프는 큐브엔터테인먼트 창립자이자 그룹 포미닛, 비스트, 비투비 등을 제작한 홍승성 대표가 설립한 S2엔터테인먼트에서 선보이는 4인조 걸그룹이다. 벨을 비롯해 나띠, 쥴리, 하늘로 구성됐답니다.
심신은 1990년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로 데뷔했다. 이후 '오직 하나뿐인 그대', '욕심쟁이' 등의 히트곡을 발매했다. 심신은 딸과 함께 2012년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출연한 바 있다.
심혜원은 아버지의 끼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는 팀에서 보컬 포지션을 맡았다. 또한 그는 지난달 1일 발매된 걸 그룹 르세라핌의 '언포기븐'(UNFORGIVEN)의 작사, 작곡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가수 박남정의 딸은 이미 걸 그룹 멤버로 활동 중이다. 박남정의 첫째 딸 박시은은 2014년 연기자로 먼저 데뷔해 드라마 '오만과 편견', '육룡이 나르샤', '서른이지만 열입곱입니다', '쌍갑포차'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이후 2021년 11월 걸 그룹 스테이씨 멤버로 가요계에 첫발을 디뎠다. 스테이씨는 현재 4세대 대표 걸 그룹으로 활동 중이다.
박시은의 부친 박남정은 1986년 댄서로 먼저 데뷔했고, 1988년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아 바람이여', '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등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널그리며' 활동 당시 'ㄱㄴ춤'을 유행시켰답니다.
MBN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4’(이하 ‘고딩엄빠4’) 모델 부부의 비현실적인 외모와 다르게 현실적인 고민이 공개됐습니다.
16일 방영한 ‘고딩엄빠4’에서는 19살, 20살에 각각 부모가 된 백동환과 김나라 커플이 등장했다. 모델을 꿈꾸며 부모의 반대도 무릎쓰고 모델학과로 대학에 진학했던 김나라는 대학교 선배인 백동환을 만나 연애 후 임신하게 됐다. 백동환은 어린 나이라며 아이를 반대했으나 김나라는 어떻게든 낳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반대한 건 김나라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늦둥이 딸로 태어나 부모에게 온갖 사랑을 다 받았던 김나라이지만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네 멋대로 나가라"라고 말한 후 김나라와 거의 연을 끊었다.
이후 아이 둘을 낳고 살아가는 두 사람. 백동환은 “반전세이지만, 3년 전에 정말 죽을 노력을 해서 이사를 했다”라고 말했고, 서장훈은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나쁘지 않다. 책임진다고 하고 책임을 안 지는 남자가 많았다”라고 말해 칭찬의 인색한 그가 현실적인 판단을 하여 백동환은 인정을 받는 듯했답니다.
그러나 군입대라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김나라는 “남편이 예정대로라면 내년 6~7월에 군대를 갈 것 같다. 사실 그것 때문에 고민도 많고, 남편이 군대 가면 어떡하지 싶다”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문제는 남편이 김나라가 일하는 걸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경제적 지원은 시어머니에게 받기를 원하는 남편에, 김나라는 이해를 할 수 없어 했다.
남편은 “내가 장모님 볼 면목이 없어서 그래”라며 숨겨둔 본심을 토로했다. 서장훈은 “이해는 된다. 장모님 보일 걸 생각하면 전혀 고생 안 시키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안다. 그런데 문제는 태도다. 태도는 그건 아니다”라고 말했답니다.
김나라는 친정 아버지를 통해 어머니와 만나길 바랐다. 그러나 어머니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백동환은 연애시절부터 시작해 장모의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상태였다. 김나라는 아버지에게 "엄마는 왜 안 오냐. 너무하지 않냐. 나는 시부모님께 도움도 많이 받고 사랑도 많이 받는다. 내가 귀한 딸인만큼 오빠도 귀한 아들인데, 면목이 없다"라며 불퉁한 표정이 되었다.
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게 길렀다. 늦둥이라고 학교도 늘 차로 데려다 주고 데리고 왔다. 마음이 준비가 안 됐다”라며 모친의 상태를 설명했다. 그러자 서장훈은 “조만간 볼 수 있었을 건데, 하지 말라고 말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해 놓고 이제야 인정해 달라고 말하면 안 된다”라고 엄격히 조언했답니다.
이에 김나라는 모친에게 영상 편지를 적었다. 김나라는 "엄마, 어릴 때 시장 데리고 갈 때 생각 나? 나더러 우리 딸 모델 같지 않냐고 너무 예쁘다고 했었지. 이제는 사위랑 딸 다 데리고 다니면서 멋지다고 자랑하고 다니길 바란다"라며 애교스럽게 편지를 보냈다.
이어 백동환은 "장모님께 드릴 말씀이 많다. 꼭 직접 말씀 드리고 싶다"라며 한층 숙성한 표정으로 장모에게 신뢰를 주는 사위다운 인사로 마무리를 맺었습니다.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 정다래(32)가 남편 이모씨의 전처를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끈다.
한 언론은 16일 “정다래가 지난해 9월 결혼한 남편의 전처 A씨가 자신의 개인채널에 올린 비방 내용을 근거로 A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라고 보도했다. 정다래는 지난해 9월 1년간 교제해온 비연예인 남자친구와 결혼소식을 알린 바 있답니다.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정다래의 개인 채널에 “이씨가 2년간 양육비를 미지급해 신상이 공개됐다” “정다래와 이씨는 양육비를 주지않는 공범이라는 게 녹취록에 다 있다” 등의 내용을 반복적으로 올렸다.
이와 관련해 정다래의 남편 이씨는 텐아시아 측에 “지난 2017년 9월 사업이 힘들어지며 강제집행이 들어오자 A씨를 보호하기 위해 위장이혼 했고, 모든 통장 거래와 부동산 명의를 전처 명의로 했다”라며 “이혼 후 재산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전처는 해당 재산을 돌려주지 않고 양육비 미지급을 주장하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씨에 따르면 위장이혼 후 4년간 함께 살았던 두 사람은 2021년11월 사실혼을 끝냈고, 이에 따라 양육비에 대한 판결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배우 박한별 닮은꼴로 ‘수영여신’으로도 불렸던 정다래는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평영 200m 금메달리스트다. 지난 2014년 부상으로 은퇴 후 수영강사로 활동 중이다.
MBC ‘라디오스타’ SBS ‘정글의 법칙’ E채널 ‘노는 언니’ 등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바 있답니다.
가수 송창식이 밝힌 특별한 가족사.."자녀 2명 입양한 계기는" - 2019. 12. 26
레전드 가수 송창식이 특별한 가족사를 공개했다.
지난 25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송창식은 "딸 2명을 입양하게 된 계기는 처형과의 인연이었다."고 밝혔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 송창식은 이날 방송에서 출산을 한 달여 앞둔 딸 내외와 만나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두 자녀를 공개 입양하게 된 특별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답니다.
송창식은 "집사람의 쌍둥이 언니가 미국에서 아기를 가지고 싶어 해서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하려고 저희 집에 딸을 잠시 집에 데리고 있었다."면서 "그러던 중 입양법이 바뀌면서 딸을 우리 집에서 입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송창식은 "처형이 미국에서 아이를 인공수정해서 낳았다. 미국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못 기르면 뺏긴다고 하더라. 그런데 처형이 아이를 못 기르는 상황이 되니까 저희가 미국에 갔다가 처형의 아이를 우리가 데려오게 됐다. 쌍둥이 언니 때문에 저희는 아이가 둘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송창식은 1977년 서울예고 동창 한성숙 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이날 방송에서 송창식은 사업 때문에 부인과 떨어져 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답니다.
그는 "아내와는 사업한다고 떨어져 산 지 20년 정도 됐다. 1년에 1~2번 본다. 다른 사람들처럼 문제가 생겨서 하는 게 아니다. 졸혼도 아니고 그냥 결혼 상태"라면서 "그래서 이런 집 이야기가 나오면 곤란하다.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집 이야기에 대해서 방송이 나갈수록 밖에 사는 집사람은 굉장히 자존심이 상할 테니까"라고 조심스러워하기도 했다.
불후' 송창식특집, 장미여관 최고점수 경신 '최종우승 - 2014. 11. 29.
장미여관이 '불후의 명곡2' 송창식특집 최종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11월 29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이하 '불후의 명곡2') 영원한 청춘의 노래 송창식편 2부에서 이지수, 노을, 자전거 탄 풍경, 손승연 김기리, 장미여관, 에스가 각각의 무대를 선보였다.
이날 '불후의 명곡2-영원한 청춘의 노래' 첫번째 무대는 에스(강타 신혜성 이지훈)의 '담배가게 아저씨'로 꾸며졌다. 뮤지컬 퍼포먼스를 연상시키는 원조오빠들의 폼나는 무대는 관객들로부터 열띤 환호를 이끌어냈고 418점을 획득, 1부 우승자 조장혁을 단숨에 눌렀다. 이어 노을이 완전체 4인조로 '불후의 명곡2' 무대에 올라 '우리는'을 감미롭게 열창했지만 에스를 꺾지는 못했답니다.
'불후의 명곡2' 세번째 무대는 손승연 김기리가 '토함산'으로 꾸몄다. 손승연 김기리는 보컬과 랩이 하나로 어우러진 시원한 무대를 꾸몄고 419점을 획득, 1승을 거뒀다. 이어진 무대는 더원에게 사사받은 BTL의 리더 이지수가 '비와 나'를 열창하며 꾸몄다. 이지수는 성대염증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발휘했으나 손승연 김기리의 419점 벽을 넘진 못했다.
'불후의 명곡2' 다섯번째는 장미여관이 '한번쯤'으로 꾸몄고 송창식의 자유로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특히 육중완은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은 모습까지 보였고 송창식으로부터 "노래가 이렇게 신나고 즐거워야 한다"라는 극찬까지 들었다. 결국 장미여관은 430점을 획득하며 송창식 특집 1위로 단숨에 올라서는 동시에, 자신들의 '불후의 명곡2' 기록도 경신했습니다.
'불후의 명곡2' 마지막 무대는 자전거 탄 풍경이 '나의 기타이야기'로 꾸몄다. 송창식의 '나의 기타이야기'는 과거 아내 한성숙과 아들 송결의 이름으로 발표했던 개인적 애착이 담긴 노래였다. 이에 자전거 탄 풍경은 혼신의 힘을 다해 불렀고 다듀 최자로부터 "사람 냄새 나는 무대"라는 호평을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전거 탄 풍경은 1승을 거두는데 실패했다.
결국 '불후의 명곡2' 송창식 특집은 혼신의 힘을 다한 장미여관 최종우승으로 마무리됐답니다.
김혜선 “우*증 심해 독일 유학, 다양한 외국인 만나다 남편과 교제 - 2023. 5. 7.
개그우먼 김혜선이 독일인 남편을 만나게 된 계기를 밝혔다.
5월 6일 방송된 JTBC 예능 '아는 형님'(이하 '아형') 382회에는 선수촌이 탐내는 인재 특집을 맞아 전진, 김민경, 허민, 김혜선, 오나미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김혜선은 "사람들이 보면 연애도 많이 안 해봤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도 연애를 많이 해봤고, 독일에 내가…"라고 털어놓다가 민경훈의 '풉' 웃음에 분노했다. 민경훈은 현재 기혼자인 김혜선이 남편을 두고 전 연애 얘기를 해 웃은 거라고 해명했지만 김혜선은 "초면에 이런 말 그렇지만 죽고 싶냐"며 믿지 않았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 김혜선은 "내가 개콘할 때 심하게 우울증이 왔다. 그때 방송이고 뭐고 때려치고 도망간다고 독일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 터키, 영국, 이란, 미국, 호주, 다양한 외국인을 만나봤는데 독일 남자를 못 만난 거다"고 밝혔다. 민경훈은 이에 "사귀었다고?"라고 확인하듯 물어 또 한 번 김혜선이 발끈하도록 만들었다.
서장훈은 "거기서 그 사람들을 다 만났다는 거냐. 몇 년 있었냐"고 물으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이에 김혜선은 "2년 반"이라고 답하며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보자 했다"고 밝혔다. 그러곤 "독일 사람을 만나봐야겠다 해서 그때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소개로 남편을 만나 돌아가야겠다고 해서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남편과의 만남을 전했다.
한편 오나미는 "언니가 한국에 잠깐 들어왔는데 이란 남자친구가 있을 때였다"고 김혜선의 말이 사실임을 인증했다. 김민경 또한 "엄청 자랑하고 다녔다. 독일 가니까 나 되게 인기 많다고"라고 덧붙였답니다.
오나미는 이런 김혜선의 인기에 "그럼 나도 가면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럼 나도 하와이를 혼자 가보자 했다. 근데 갔는데 아니더라"고 털어놓았고 서장훈은 "잘못 골랐다. 하와이에는 동양 사람이 너무 많다. 특별함이 없다"고 조언했다. 김혜선은 "독일에선 내가 아담하고 작곡 귀엽거든"이라고 맞장구, 본인의 인기 비결을 공개했다.
이어 오나미는 "좋은 추억 남기고 한국에 들어오려 하는데 캐리어를 맡기려고 했다. 외국인 승무원이 계시더라. 캐리어를 가리키며 '브라자?'라고 하더라. 왜 나한테 브라자를 얘기하지 싶어 '브라자?'라고 했더니 '오 큐티'라면서 너무 즐거워 하시더라. 그러고서 빨간색 딱지를 붙이더라. 'fragile' 깨지는 물건 있냐는 건데 내가 브라자인 줄 안 것"이라고 유쾌한 일화를 공개해 웃음을 자아냈답니다
'연중플러스' 김혜선 "♥스테판 지겔, 소개팅서 1시간 30분 기다려줘…결혼 생각 - 2023. 3. 9
'연중플러스' 코미디언 김혜선이 독일인 남편 스테판 지겔과의 연애사를 공개했다.
9일 밤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연중플러스'에서 국제결혼을 한 커플을 주제로 김혜선과 스테판 지겔을 인터뷰했다.
이날 방송에서 김혜선은 남편과의 만남에 대해 "소개팅으로 만났다 1시간 반 늦었는데 기다려줬다. 이 사람하고는 연애보다는 결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스테판 지겔은 "1시간 30반 기다리고 혜선 씨가 왔는데 엄청 신났다. 기다림보다 좋은 기분이 더 많았다"라고 애정을 드러냈답니다.
지난 2일 민우혁은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 종영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OSEN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민우혁은 2003년 드라마 ‘요조숙녀’ OST ‘숙녀에게’로 처음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뒤, 같은해 11월 뮤지컬 ‘젊음의 행진’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 첫 발걸음을 딛었다. 이후 ‘레미제라블’, ‘벤허’, ‘프랑켄슈타인’, ‘지킬 앤 하이드’ 등 유명 뮤지컬을 통해 연기력을 드러냈고, 다양한 예능에 출연해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도 했답니다.
이후 JTBC ‘제3의 매력’, MBC ‘하자있는 인간들’, KBS2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 등으로 본격적으로 브라운관에도 얼굴을 비췄다. 그에게 무대와 브라운관에서 보여주는 연기에 차이점을 묻자 “무대 연기는 1층, 2층 넓게는 3층까지 감정연기가 잘 표현되어야하고, 몸짓이 커야한다. 목소리의 질감, 감정으로만 느낄 수 있기에 동작이 컸다. 그게 부담스럽게 보일수있었는데.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니까 아무것도 안하시는데 감정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민우혁은 “경멸할 때 그 포인트를 생각만 해도 눈에서 감정이 느껴진다고 하더라. 속으로 욕만해도 눈에 대한 감정이 바뀌어진다고 하셨다. 매체 연기는 속으로 생각만해도 표현이 되는 걸 배웠고, 매체연기에 대한 욕심도 커진 것같다. 앞으로 더 기대가 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다”고 밝혔답니다.
이어 민우혁은 뮤지컬과 드라마의 차이에 “뮤지컬은 모든 게 약속이다. 모든 타이밍, 대사큐 등 수십번, 수백번 연습을 해서 그안에서 자유롭게 하는 게 무대 연기라면 드라마 연기는 ‘리허설 한번 해볼게요’하고 움직이면 그때부터 카메라 구도나 감독님의 연출이 나온다. 거기서 처음 놀랐고 정해준대로 하는 게 익숙하다보니까 움직이지를 못했다”면서 “선배들은 자유롭게 그 안에서 움직이시고, 상대배우에게 여러 말씀을 하는 걸 보고 이건 현장에서 배우고, 공기를 느끼고, 상대배우가 하는 말도 중요하게 캐치를 잘해야갰다는 생각을 했다. 느낀대로 해야 자연스럽구나를 배웠다”고 표현했다.
민우혁은 ‘차정숙’ 속 로이와 ‘영웅’ 속 안중근, 두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는 것에 대해 헷갈리는 부분은 없었을까. 민우혁은 “로이와 정반대인 안중근을 연기하니까 힘있는 대사를 막 하다가, 로이를 연기하려고 가면 목소리의 힘이 강해져있다”라며 “그러면 (엄)정화 누나가 ‘우리 우혁이가 공연을 하고 와서 에너지가 넘쳐요’하면 그걸 알아채고 다시 돌아오려고 한다. 그걸 저 혼자 캐치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형,누나들,감독님께서 ‘로이가 조금 조국을 위해 힘쓰는 것 같아요, 조금만 힘빼주세요’라고 해주셔서 조율이 가능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답니다.
특히 드라마와 뮤지컬을 병행하면서 ‘닥터 차정숙’ 배우들에게 많은 배려를 받았다며, 민우혁은 “정화 누나가 늘 첫타임에 같이 연기를 했고, 제가 먼저 촬영을 해야하면 (명)세빈 누나는 딜레이가 돼서 대기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먼저 촬영하라고 배려를 해줬고, 나중에 들어보니 세빈 누나가 대기를 하다가 촬영을 못하고 가셨다고 하더라”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민우혁은 “그때 죄송해서 인사를 하러가니 힘들지 않냐면서 저한테 시집을 선물해주셨다. ‘이 배우들 정말 천사인가?’라고 생각이 들었고, 모두가 배려하고, 노력을 해주셨다. 그래서 이 작품이 따뜻한 마음이 모여서 잘된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 더욱 끝나는 게 실감이 안간다”고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민우혁 '불후의 명곡' 금의환향 "스태프 눈빛부터 달라져" - 2023. 6. 17
17일 방송되는 KBS 2TV '불후의 명곡' 611회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힘내라 제복의 영웅들'로 꾸며진다. 바다, 손준호·김소현, 민우혁, ATEEZ, 라포엠, THE NEW SIX(TNX) 등을 비롯해 공무원 32인의 특별한 무대가 펼쳐진다.
최근 녹화에서 토크 대기실에 민우혁이 등장하자 MC 이찬원은 반색하며 "민우혁이 출연한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빠짐없이 챙겨봤다"고 로이킴 앓이를 고백했다. 민우혁의 옆자리에 앉은 바다 역시 “대세남 민우혁 씨 옆에 앉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친분을 과시했답니다.
민우혁은 "'닥터 차정숙' 로이킴 캐릭터로 달라진 인기를 실감하냐"는 질문에 “꽤 오랜 기간 무명이었다.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모든 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특히 팬 분들 연령층이 되게 낮아졌다.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특히, 민우혁은 "'불후의 명곡' 내 위상이 달라졌다"고 강조하며 “제가 '불후의 명곡' 40번 정도 나왔다. 오늘 리허설 하는데 스태프들 눈빛부터 달라졌다”며 “무대 예쁘게 준비해 주시고 특수효과도 비싼 걸로 준비했다고 하시더라”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답니다.
민우혁은 바쁜 드라마 촬영 스케줄 속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유일하게 '불후의 명곡'에 출연했다며 남다른 의리도 뽐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다 '불후의 명곡' 덕분”이라고 재차 언급하며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고.
이와 함께 민우혁은 '닥터 차정숙'에서 호흡 맞춘 엄정화와 '불후의 명곡'의 남다른 인연도 공개했다. “제가 '불후의 명곡' 첫 출연했을 때 전설이 엄정화였다. '눈동자'라는 곡을 불러서 굉장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회상한 것. 해당 일화를 접한 엄정화의 의외 반응도 귀띔했다.
한편 이번 특집은 현충일과 6.25전쟁일, 제2연평해전 등이 있는 6월, 국민의 일상을 지켜주고 있는 제복 근무자 영웅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기 위해 마련됐다. 소방관, 경찰관, 해양경찰관, 교도관, 군인 등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제복 공무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함께 축제를 즐긴답니다.
하이라이트는 제복을 갖춰 입은 공무원 32인이 꾸며낸 '나는 문제 없어' 특별 무대다. 멋지게 제복을 갖춰 입은 공무원들이 프로가수 못지 않은 가창력과 하모니를 뽐내 모두의 박수를 이끌었다는 후문이랍니다.
설경구 씨의 아버지는 지병으로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던 것입니다. 설경구, 송윤아 부부는 가까운 지인에게만 장례 소식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모레(14일)입니다.
설경구 씨는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더 문'에서 우주에 고립된 대원을 필사적으로 구하려는 전 우주센터장 재국 역을 맡아 호평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설경구♥’ 송윤아, 자녀 교육 고민 “조바심 떨칠 수 없어 - 2023. 4. 28
배우 송윤아가 아이들 교육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4월 27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by PDC 피디씨'에서는 송윤아가 제주도에서 사는 캠핑카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날 송윤아는 "사실 저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어놀고 밖에서 아이들과 놀고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해야 정말 좋다는 걸 알면서도, 그 시간에 숙제를 해야지, 그 시간에 문제를 풀어야지 하는 조바심을 떨칠 수 없다"고 털어놨답니다.
인천에서 살았던 캠핑카 가족의 아버지는 "도심에서와 여기가 너무 다른 게, 제가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갔는데 방과 후에 아이들이 다 나오지 않나. 노란차와 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 가버리는 거다. (방과 후에) 만나서 뛰어노는 친구들이 없더라. 여기서는 딸 아이가 집에 안 오려고 한다. 풀밭 운동장에서 뛰어 노느라"라고 했고 캠핑카 가족의 어머니는 "학교에서 자기가 뜨개질 동호회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송윤아는 "자연을 벗 삼아, 친구 삼아 아이들이 맘껏 모든 걸 생각하고 느끼고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저희 같은 사람이 내지 못하는 용기가 있으신 것 같아서 너무 부럽기도 하다"며 감탄했다.
심현섭은 26일 방송된 MBC '세상을 바꾸는 퀴즈 세바퀴'에 출연해 아버지가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순직한 고 심상우 의원이라고 말했답니다.
이날 심현섭은 "(1983년) 10월 6일 아버지가 집을 나섰고 아웅산 테러 사건은 10월 9일 터졌다"라고 말했다. 당시 심현섭은 중학교 1학년이었다.
이어 심현섭은 "아버지의 마지막 기억은?"이라는 질문에 "비 많이 오던 10월 6일이었다"라며 "아버지 구두를 자주 닦아드렸는데 그 날 아버지가 '전에 꺼 못 줬지?'라며 2천원을 손에 쥐어주시더라"라고 말했다.
또 심현섭은 "신기하게 그 날 따라 안 하던 얘기를 하고 가셨다. '세상에 공 것은 없다. 나중에 네가 하는만큼 대가가 갈 것이다. 나중에 네가 남편 가장이 되면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때는 흘려 들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암시인가, 복선인가 싶더라"라고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을 회상했답니다.
"하루 수입 3억"…심현섭 근황 "母 빚 15억 갚고 간병 12년 - 2023-08-08
심현섭이 근황을 알렸다.
8일 ‘근황올림픽’에는 ‘[심현섭을 만나다] 전성기에 하루 3억 벌던 국민 개그맨.. 남양주에서 돈까스 파는 근황’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습니다.
남양주에서 돈가스집을 운영 중인 심현섭은 “선을 보면 많이 물어보신다. ‘일 안 하셔도 되지 않아요?’ 이런다. (전성기에) 하루 17개 일을 했다. 라디오 광고 하루에 4개, 체육대회 3개, 나*트*럽 5개, 이거저거 방송 2개, 한 17개까지 하니까. 그러니까 하루에 3억 2천만 원을 번 거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별군데 행사를 다 다녔다. 왜? 어머니의 *때문에. 91년에 어머니가 빚이 15억 8천만 원이 생겼다. 어머니가 가정주부였고 아버지 뒷바라지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5남매가 있으니까. 하던 사람이 했어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를 그걸로 한 번도 원망하지 않는다. 누가 공동투자하자고 해서 투자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없어졌다(돈을 들고 도망간). 7년 만에 *을 다 갚았다”고 말했답니다.
이후 심현섭은 “앰뷸런스도 하루에 두 번을 탄 적도 있고 긴 간병에 효자 없다고 그러는데 그 말이 너무 싫었다. 한번 해보자. 나중에 뇌경색이 오셨다. 어머니 간병을 길게 12년을 했다”고 과거를 돌아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