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7일) 저녁, 박지환이 서울 모처에서 이미 법적 부부가 된 아내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양가 가족과 친인척, 가까운 지인과 함께하는 비공개 결혼식을 올린 것이랍니다.
이날 결혼식에는 영화 ‘범죄도시4’에 함께 출연해 흥행몰이 중인 배우 마동석이 아내 예정화와 함께 참석해 의리를 뽐냈다. 또한, 배우 송중기·케이티 루이즈 손더스 부부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사회는 배우 조정석, 축사는 마동석이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에 박지환 소속사 저스트 엔터테인먼트 측은 지난 3월 8일 “박지환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늦은 결혼식을 올린다”라며 결혼을 발표한 바 있다. 이미 혼인신고를 해 법적 부부가 됐으며 아들도 먼저 품에 안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아쉬움에 늦깎이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랍니다.
한편, 박지환은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장이수’ 캐릭터를 맡아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예능 ‘텐트 밖은 유럽’, ‘SNL 코리아 시즌5’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텐트 밖은 유럽’에서 아내와 다정하게 통화하며 사랑꾼 면모를 드러낸 바 있다.
'범죄도시4', 개봉 첫 주말 손익분기점 넘는다..4일째 300만 돌파 -2024. 4. 27
'범죄도시4'가 개봉 4일째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24년 최단기간 흥행 기록을 새롭게 쓰고 있다. 27일 오후 6시 10분 기준 300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4'는 개봉 7일째 300만을 돌파한 '파묘'의 2024년 최단기간 흥행 기록을 가뿐히 뛰어넘으며 압도적인 흥행 기세를 보여주고 있답니다.
뿐만 아니라 시리즈 최단기간 300만 관객 돌파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전편 '범죄도시3'(2023)와 동일한 속도로 3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범죄도시4'는 개봉 2일째 100만 관객, 개봉 4일째인 오늘 아침 200만 돌파에 이어 단 10시간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24년 최단기간 흥행 신기록을 세워 극장가의 흥행 강자로서 입지를 더욱 굳건하게 다진답니다.
개봉 첫 주 주말 토요일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연일 새로운 흥행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범죄도시4'가 개봉 이후 연일 압도적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멈출 줄 모르는 흥행 질주 중인 가운데, 남은 주말 스코어 역시 어떤 놀라운 기록을 세울지 기대가 더욱 모아진다. 특히 개봉 첫 주말 손익분기점(35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답니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아들인 신재원(26·성남FC)이 한국이 아닌 인도네시아를 응원하겠다고 했다고 선언했답니다.
인도네시아 매체 포스코타는 지난 24일 신재원이 인도네시아 축구계를 충격에 빠뜨렸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신재원은 이번 만큼은 인도네시아 팀을 응원하기로 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오는 26일 U-23 아시안컵 8강전에서 격돌한답니다.
K리그 성남FC에서 공격수로 뛰고 있는 신재원은 지난 23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8강에서 만나지 않길 원했는데 만났다"며 태극기와 인도네시아 국기를 게시했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이번만큼은 아빠를 응원하겠다.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을 응원해달라. 인도네시아 파이팅"이라고 적었답니다.
한국이 아닌 아버지가 이끄는 팀인 인도네시아 팀을 응원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선 한국이 인도네시아를 앞선다. 역대 U-23 연령 대결에서 한국이 5전승을 기록했습니다.
‘신따이용 신드롬’ 신태용 “우린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독려했죠” -2024. 4. 11
신태용(54) 인도네시아 축구 대표팀 감독이 최근 인스타그램에 올린 답글이다. 축구 게임 광고 영상 속 ‘신바람 이박사’처럼 춤추는 신 감독의 모습에 큰아들 신재원(K리그2 성남FC)이 ‘이제 계속 춤추기로 한 거예요?ㅋㅋ’라는 반응을 남겼고 여기에 답글로 장난스럽게 투정한 것이랍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을 이긴 ‘카잔의 기적’ 당시 한국 대표팀 감독이던 신 감독은 올해 ‘인니의 기적’을 이끌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1월 아시안컵에서 사상 첫 16강 신화를 이뤘고 지난달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에서는 동남아시아 강호 베트남을 1대0, 3대0으로 제압했다. 베트남전 관중석에는 ‘삼성 미안해요. 한국 최고 수출품은 신태용’이라는 응원 문구도 등장했다.
베트남 축구 영웅으로 추앙 받았던 박항서 전 감독처럼 인도네시아 축구에 신 감독의 존재는 구세주다. 출연하는 광고가 6~7개에 이르고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250만에 육박한다.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한 신 감독은 “인스타그램에 우리 선수들과 경기했던 사진, 일상 사진들을 올릴 뿐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데 240만 넘는 팬이 응원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하고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광고는 촬영 시간이 길고 여전히 어색하지만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 정말로 스태프들이 워낙 잘 챙겨줘서 크게 힘든 것은 없다”고 했답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신 감독을 현지 발음으로 ‘신따이용’이라고 부르고 쓸 때는 영어 이니셜로 ‘STY’를 사용한다. 현지에서 인기가 어느 정도냐는 물음에 신 감독은 “어디를 가든 사진 찍어달라고 하고 길거리에서 보면 ‘신따이용’ 외치면서 환호해주고 쫓아오고 그런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시안컵 16강만으로도 역사적인 일인데 베트남전 연승으로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도 예약했다. 대업 달성 뒤 느슨해질 수도 있었을 선수단을 신 감독은 어떻게 다잡은 것일까. 그는 “16강을 기뻐하는 것은 좋지만 이제 우리는 첫걸음을 뗐을 뿐이고 올라갈 일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베트남과 2연전은 그렇게 올라가기 위한 큰 발판이자 1년 중 가장 중요한 경기라고 동기부여를 하면서 팀을 만들어갔던 것이다”고 돌아봤다.
신 감독은 2019년 말에 인도네시아를 맡았다.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여기 선수들은 좀 느긋한 스타일이었어요. 한국 선수들은 훈련장 가면 2~3분이면 준비해서 피치로 나오는데 이 친구들은 감독·코치들 다 나와 있는데도 신발끈 매면서 서로 얘기하고 그러다가 10분 뒤에 나오는 것입니다. 엄청 혼내고 시간 약속 안 지키면 벌금 내게 하면서 규칙을 몸에 배게 했죠. 어떤 일에든 핑계 못 대게, 거짓말 못 하게 강하게 잡아갔죠.”라고 전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스킨십과 장난을 걸면서 격의를 무너뜨렸다. “화도 내지만 어느 시점에는 다가가서 풀어주고 또 너무 풀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인상도 쓰면서 ‘밀당(밀고 당기기)’에 신경 썼다”는 설명이다. 신 감독은 카멜레온 전술로 유명한데 우리 팀을 속속들이 잘 알고 적도 아군에 버금가게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전술이다. “한국에서 감독 생활할 때나 지금 여기 선수들한테나 똑같아요. 스스로 칭찬할 수 있는 경기를 하라고 주문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지더라도 다음에 어떻게 도전할지 준비가 되거든요.”
신 감독은 골프 고수로도 유명하다. 퍼트 감각이 좋아 한 라운드에 버디 7개를 잡은 적도 있다. 드라이버 샷으로 220~230m를 보내며 평균 70대 중반 스코어를 유지하고 있다. 신 감독의 골프 사랑은 여가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아골프리더스포럼(AGLF·회장 김정태) 주관으로 열린 시몬느 아시아퍼시픽컵의 홍보대사로 활약하며 현지 골프계와 교류하는 등 축구뿐 아니라 ‘K골프’도 전파하고 있답니다.
신 감독은 지금 카타르에 있다. 23세 이하(U-23) 대표팀 사령탑도 겸하고 있어 파리 올림픽 티켓이 걸린 U-23 아시안컵에 집중할 시기다. 15일 개막하는 이번 대회에서 인도네시아는 카타르·호주·요르단과 한 조다. “우리 조가 죽음의 조”라고 진단한 신 감독은 “좋은 팀들에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겠다. 목표는 예선 통과”라고 했다.
신 감독 부임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73위였던 인도네시아 A대표팀은 현재 134위다. 쿠웨이트(139위)보다도 높다. 아시아에 배정되는 월드컵 본선 진출권이 4.5장에서 8.5장으로 늘어 2026 북중미 월드컵 참가도 꿈이 아니다. 하지만 신 감독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재로서는 본선에 도전하는 나라들 중 정말로 우리가 꼴찌”라고 자세를 낮췄ㄷ바니다.
카잔의 기적을 넘어서는 최고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느냐는 물음에 신 감독은 “그때의 기쁨은 지나간 일이다. 돌아보면 팀을 맡아서 만들어간 기간이 고작 10개월이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월드컵에 나간다면 긴 호흡으로 진정한 도전을 해보고 싶다”면서 “한국 대표팀이든 인도네시아 대표팀이든 그렇게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밝혔답니다.
두데’ 조권 “가인과 ‘아담커플’, 벌써 10년 넘어…정말 많은 사랑 받았다” -2023. 5. 24
두데’ 조권이 가인과 ‘아담커플’로 많은 사랑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24일 오후 방송된 MBC FM4U ‘두시의 데이트에서는 조권이 스페셜DJ로 나섰답니다.
이날 ‘두데’에서는 조권과 가인이 부른 ‘우리 사랑하게 됐어요’가 선곡됐다.
조권은 “나도 떠오른다. 내가 또 MBC의 아들 아니냐”라고 말을 꺼냈다.
그는 “진짜 이때 당시에 정말 많은 사랑을 전세계적으로 가상부부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은 사랑을 받았어서 아직도 이 노래가 흘러 나오면 그때 그 시절로 정말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라고 밝혔답니다.
이어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래도 아담커플을 기억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린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DJ 애칭과 관련해 “깝은 내가 긍정으로 만든 나의 시그니처 단어이다”라고 소개했다.
이에 “조디는 평범하고 깝디라고 하면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니처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 깝디가 되는 그날까지 기대해보도록 하겠다”라고 다짐했답니다.
한 팬은 조권에게 “여전히 피부 관리 열심히 하는지 궁금하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조권은 “얼굴 엄청 치다가 얼굴 찌부된다”라고 조심할 부분을 당부했다.
조권 “결혼하고 싶었던 전 연인에 매달려, 공연표 보내니 반송 -2024. 4. 17
조권이 결혼하고 싶었던 전 연인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4월 16일 방송된 SBS ‘강심장VS’에서는 ‘흐린 눈의 광인’ 남규리, 이홍기, 조권, 정이랑, 윤수현이 출연했습니다.
조권은 “20살에 데뷔했고 일찍 회사에 들어가 트레이닝을 받아 연애할 시간이 없었다. 노래가사에 공감을 못했다. 이게 널 웃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왜 웃기다는 거야? 개인 가정사, 연습생 때 힘들었던 것, 혼났던 걸 상상하며 노래를 했다”며 “이제 나이가 차니 이해는 된다. 저도 경험이 있고. 36살이다. 연애 안 해 봤을 리도 없고”라고 말했다.
전현무가 “연애 했구나. 몰래 잘해서 안 한 줄 알았다”고 반응하자 조권은 “처음 이야기하는 거다. 연애했던 걸. 한 사람을 오래 만났다. 사랑했나 보다. 안에 끼가 넘쳐흐르지 않냐. 판 깔아주면 작두 위에서 노는 사람인데. 그런데 진짜 이 사람이 가수 안 했으면 좋겠어, 외국 나가서 평범하게 살자고 하면 그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고 연애사를 고백했답니다.
엄지윤이 “이쪽 계통 사람이냐”고 묻자 조권은 일반인이라며 “사랑이라는 경험을 해보니까 노래 부르는 게 다르더라. 연애하고 이별하고 부른 노래와 16년 전 노래가 목소리를 들으면 앳된 것도 있지만 제가 듣기에는 너무 다르다”고 했다.
조권은 전 연인을 끝까지 붙잡았다며 “1년 전에 헤어졌는데 헤어진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썼다. 나의 오늘은 이랬어. 소개해준 친구를 통해 전달도 하고. 유명한 내한 공연이 있어서 티켓이 2장 나왔는데 전에 그 아티스트 공연을 가고 싶다고 했었다. 그래서 표만 보냈는데 반송 됐던 상황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전현무는 브루노 마스 공연이라 바로 맞혔고 조권은 “어떻게 알았냐”고 놀라며 “그러고 나서 많은 상황이 있었는데. 그 친구 동네로 가게 됐다. 얼굴 보자고 해서. 표정만 봐도 안다. 식었다는 걸. 식어버린 얼굴을 보고 저도 마음이 안 좋았지만 그만하자고 말을 하는데 폭풍 같은 비가 오더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 되더라. 무릎도 꿇었던 것이다”고 했다.
조권은 “긴 시간 만났어도 5분 만에 공중분해 되더라”며 허탈한 마음을 드러냈고 정이랑이 “그분하고 결혼하고 싶었냐”고 묻자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아침마당' 미대 출신 김한국 "디자인 공부하다 돈 벌려고 개그맨 시험 -2024. 4. 23.
코미디언 김한국이 디자인 공부를 하다 돌연 개그맨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밝혔다.
23일 방송된 KBS1 '아침마당'에서는 '화요초대석' 코너를 통해 김한국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노래하는 미대 오빠'라는 키워드가 나와 관심이 집중됐다. 김한국은 "그림은 초등학교 때 순수회화를 하다가 고등학교 때 진학을 위해 디자인 쪽으로 바꿨다. 미대를 다녔다"고 밝혔다.
또한 "학교에서 그룹사운드, 리드보컬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그 시절 풋풋하면서도 쾌남 이미지의 사진이 공개되자 모두가 감탄하기도 했답니다.
가요제에 출전할 정도였지만, 진행자 김재원이 꿈이 가수였냐고 묻자 김한국은 "꿈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중학교 때 오락부장, 고등학교 때 응원단장 등 떠밀려 노래를 한 것뿐이지 가수가 되겠다는 뜻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김한국은 돈을 벌기 위해 KBS 공채 개그맨 시험을 보게 됐다. 김한국은 "당시 2~3명이 모여서 화실을 운영했다. 입시생이나 취미생을 받았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숙제도 할 겸 미술도 배울 겸 받았기에 수입이 좋았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아르바이트, 과외 등등 금지되니 등록금도 해결이 안 됐던 상황이다. 고급디자인을 하려면 재료비가 많이 드는데 그런 것들이 충당이 안 되는 거다. 방법이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KBS에서 개그맨을 뽑는다고 하더라"고 개그맨 시험에 도전하게 된 이유를 밝혔답니다.
김한국 아들, 배우급 외모 '눈길'..알고보니 '전 축구선수' -2015. 11. 5
김한국 아들이 훈훈한 외모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거 MBC '추억이 빛나는 밤에'에서는 김한국의 아들에 대해 공개됐습니다.
이날 MC 김희철은 김한국의 프로필을 소개하며 "김한국을 '쓰리랑 부부' 순 악질 여사의 남편으로 알고 있다면 추억 세대.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선수 김환의 아버지이자 꽃미남 아들을 자랑하는 '아들 바보'로 알고 있다면 당신은 신세대가 아니라 지인"이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한편 김한국 아들은 지난 2007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축구선수로 데뷔해 활약한 바 있답니다.
학력 경희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포스트모던음악학과 / 학사) 병역 대한민국 해군 병장 만기전역
포지션 베이스 기타, 기타, 보컬
종교 개신교
"형이 왜 여기서 나와?" 윤도현, 박태희 보고 깜짝 -2024. 4. 14
YB 밴드 윤도현이 동료 박태희의 출연에 깜짝 놀라워했다.
14일 저녁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는 가왕 '희로애락도 락이다'의 7연승을 막기 위한 복면 가수들의 1라운드 듀엣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이날 무대에는 '살랑살랑 구피'와 '히죽히죽 백구'가 올라 '먼지가 되어'를 함께 가창했다. '히죽히죽 백구'는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힘 있는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기선을 제압했고, '살랑살랑 구피'는 무게감 있는 보컬로 화답했다.
두 사람의 무대가 끝나자 산다라박은 "'히죽히죽 백구'는 귀여운 가면 속에서 파워풀한 목소리가 나와서 놀랐다. 연령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살랑살랑 구피'가 연령대가 높은 건 확실하다. 어딘가 연륜과 흥이 느껴졌던 것이다"라고 평했고, 김구라 역시 "옷에 달린 레이스가 옛날 중국집의 문발 같다. 그걸 한두 번 정도 열어본 아주 반가운 얼굴이 아닐까 싶다"라고 예상했다. 이와 함께 "'히죽히죽 백구'는 트로트 가수가 아닐까 싶다"라고 추측했으나, 송가인은 "두 분 다 트로트 가수는 아닌 것 같다"라고 상반되는 입장을 내놨답니다.
공개된 결과에 따르면 '히죽히죽 백구'가 승자로 정해졌다. 이에 '살랑살랑 구피'는 솔로곡으로 '휘파람'을 부르며 자신의 정체를 공개했다. 그 정체는 바로 YB 밴드의 베이시스트 박태희. 그를 본 윤도현은 "형이 왜 나왔던 것이냐"라며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답니다.
윤도현은 "전혀 예상을 못했다. 솔로곡 때 알아차렸다. 목소리 톤이 딱 생각나더라. 오늘 메시지가 왔다. 건강검진 받으러 간다고 하더라. 아침에 기도까지 해줬는데 여기에 와 있다"라면서도 "투표는 '히죽히죽 백구'한테 했다"라고 민망하게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이를 들은 박태희는 "원래 건강검진 날짜가 맞는데 '복면가왕'을 위해 미뤘던 상황이다"라고 해 놀라움을 자아냈답니다.
25일 방송된 JTBC '가장 보통의 가족'에서는 방송인 서유리와 최병길 PD 부부의 신혼 생활, 최정윤의 독박육아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결혼 8개월 차인 부부는 럭셔리 신혼집도 공개했다. 사방이 유리로 돼 있는 통유리 집. 최병길 PD는 리프팅 레이저 시술을 받아 회복용 복면을 쓰고 있어 웃음을 자아냈다.
서유리는 "남편이 결혼을 했는데도 싱글처럼 소비하고 정말로 개인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최병길 PD는 2천만 원짜리 커피머신에 아침식사 재료비로 무려 39만 원을 소비했다. 캐비어에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로 에피타이저를, 푸아그라 요리에 트러플 요리까지 만들었다.
또 고가의 인테리어를 모으고 있다고 밝혀 서유리의 지적을 받았다.
두 사람은 부부의 경제권을 두고 싸움에 나섰다. 서유리는 경제권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했고 최병길은 둘 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니 각자 관리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오은영 박사는 두 사람에 대해 "부부의 공동 목표를 두고 이야기를 해보라"고 조언했다.
하하는 "나는 다 드릴 수 있지만 내가 관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고은은 "나는 남편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답니다.
이어진 VCR에서는 서유리가 남편 최병길에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 담겼다. 서유리는 "우리집의 통금 시간은 밤 11시"라고 밝혔다.
불안한 이유에 대해 서유리는 "어릴 때부터 저는 안정이 없었던 것이다"며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장으로서 항상 불안정한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후 "결혼을 하면서 약간의 안정을 좀 찾았다. 그런데 나는 이 안정을 누리면 안 되는 사람 같았다. 이 불안이 거짓말처럼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며 눈물을 보였답니다.
'꼬꼬무' 선감도로 끌려간 아이들 "우리는 부랑아가 아니다"…그들이 그곳에 간 이유는? -2024. 4. 19
18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그 섬에 아이들이 있었다'라는 부제로 선감 학원에 간 아이들의 그날을 추적했다.
2016년 7월, 허일용 씨는 한 야산에서 굴착기까지 동원한 발굴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뼛조각 일부와 신발을 본 그는 자신의 쌍둥이 형 같다고 했습니다.
그의 쌍둥이 형은 여덟 살의 나이로 사망해 50년 만에 유해로 발견된 것. 대체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비극을 맞은 것일까.
1960년대 초, 미아리에 살던 일용 씨와 그의 형은 할머니와 함께 시장 나들이를 나섰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할머니 손을 놓쳐버렸다.
그들 앞에 등장한 경찰. 형제는 집을 찾아달라고 했고 금세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이들은 미아보호소 등을 거쳐 선감도라는 작은 섬에 도착했답니다.
1969년 여름, 할머니댁에서 지내던 찰떡 형제는 수원역에서 큰 형과 놀다가 형이 일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역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경찰들에 이끌려 어딘가로 갔다. 미아보호소를 거쳐 어딘가로 이동하는 차. 형제는 할머니집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내려달라고 했지만 아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매질뿐이었다. 그리고 이들도 역시 선감도에 도착했다.
수원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중, 엄마가 화장실 간 사이 경찰들은 영수 씨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는 영수 씨의 이야기에 경찰은 엄마도 조금 있다가 오시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나 영수 씨가 도착한 곳 역시 선감도였습니다.
그리고 영수 씨는 선감도로 오는 도중 "여기서는 너희 자립시켜 주고 좋은 기술을 가르쳐줄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떠올렸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선감도의 선감학원.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곳에 왔으며 일용 씨의 형은 왜 사망했을까. 일용 씨는 형의 이상했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답니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형은 입에 담요 조각을 잔뜩 물고 죽었다는 것. 그의 형은 굶주림에 담요 조각을 먹아다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50년이 지난 후에야 찾았다는 것.
시신이 암매장된 곳에는 분묘가 150구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곳에 묻혀있는 이들은 선감학원의 피해자들. 사망 원인은 알 수 없으며 그 인원도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선감학원이 밝힌 사망 인원은 20명이지만 분묘는 150구랍니다.
선감학원에 온 아이들은 그중 일부만 학교에 보내지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노역에 동원됐다. 무려 5000평의 염전을 농지로 개간하는 일을 하고 노동 할당량을 못 채우면 매질과 처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감학원을 운영한 이는 대부분이 공무원이었다. 또한 원생들 안에 서열을 나눠 아이들을 관리하도록 했답니다.
폭행과 강제노역에 시달린 아이들은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단무지와 새우젓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반찬이었으며 늘 굶주림에 시달린 아이들은 흙을 파먹고 오물을 먹고 나무 열매, 굴, 메뚜기, 쥐, 개구리 등 섬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다 먹었다.
이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부랑아라는 것. 선감학원은 부랑아 수용시설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랑아가 아니었다. 정부는 법률적 정의와 단속 기준이 없이 아이들을 수집했다. 가족과 생이별한 아이들은 신원 확인 보호자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허위로 작성된 원아 대장만을 가지고 선감학원에 수용됐습니다.
평범한 아이들에게 부랑아라는 낙인을 찍고 무려 40년간 운영된 선감학원. 1942년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져 1982년까지 유지된 선감학원.
그곳에 수용된 아이들은 무려 4,689명에 발했다. 그러나 이 숫자조차 정확한 숫자인지도 알 수 없다.
선감학원 아이들은 어둠이 내리면 들리는 곡괭이 자루 끄는 소리에 바들바들 떨었다. 이 소리는 폭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답니다.
그리고 선감학원 원생들은 이보다 더한 짓도 당했다. 입에도 담을 수 없는 일을 당한 아이들은 힘들 때마다 엄마를 떠올렸다.
또한 아이들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탈출에 성공하는 애들은 극히 소수였다. 탈출을 시도하다 잡혀 매질을 당하거나 갯벌 상태일 때 뭍으로 가다 밀물이 들어와 그 물살에 휩쓸려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찰떡 형제 중 형은 동생을 생각하며 견디려고 했지만 고통이 너무 심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다. 죽으면 괴로움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그렇게 형은 약을 하나씩 모았고 이를 다 털어 넣던 그때 직원이 이를 막았다.
그리고 그 후 찰떡 형제는 다른 시설로 옮겨졌다. 극단적인 상황이 생겨야 선감학원을 나갈 수 있었던 것.
영수 씨는 수차례 탈출시도했고 선감학원에서 3년이 흐른 날 다른 시설로 이동하던 중 달아났답니다.
당시 선감학원을 취재한 기자는 내부 제보를 받아 선감도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직원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아이들에게 인권 유린이 행해진다는 것을 알아채고 이를 보도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날 다시 방문한 선감학원은 무엇하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몇 차례 문제점이 보도되었지만 개선되는 것은 없었던 것. 이는 이 문제를 알고 있는 이들이 묵인하고 방치했기 때문이었답니다.
찰떡 형제는 각각 시설에서 도망을 쳤고 다시 만났다. 그리고 진짜 부랑아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가족을 다시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영수 씨 가족을 찾으려 애썼지만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40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형을 다시 만났다.
한눈에 형제임을 알아본 두 사람. 영수 씨는 형에게 자신을 찾았는지 물었다. 이에 그의 형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영수 씨를 그리워하며 눈물로 지새웠음을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답니다.
형을 만나기 불과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묘를 찾은 영수 씨. 그는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는 말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일용 씨는 가족을 찾지 못했고 찰떡 형제는 다행히도 가족을 찾았다. 그러나 찰떡 형제의 형은 아직도 가끔 선감도를 찾아가고 있었다.
당시 외로움을 함께 견뎌냈던 친구 망치가 그곳에 남아있기 때문. 그리고 지난해 그는 친구를 찾았답니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유해와 유품들 중에서 망치의 유품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항상 함께 굴을 까먹을 때 썼던 굴 까던 도구를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현장으로 찾아간 형은 친구의 유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최근 선감학원의 유해 발굴을 직접 추진하기로 한 경기도. 그리고 진화위에서는 선감학원과 관련된 기관에 모두 인권 유린 책임이 있다며 공식적 사과를 권고했습니다.
현재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지원금도 받을 수 있게 된 상황. 하지만 도의 예산이라 경기도 거주자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아쉬움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