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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 “母, 산삼 열뿌리씩 채취‥아침에 눈뜨면 내 입으로”(동치미)
- 2024. 2. 2.

야구선수 출신 윤석민의 모친이 아들을 위해 직접 산삼을 캤다고 밝혔다.

2월 1일 공개된 MBN '속풀이쇼 동치미' 선공개 영상에는 야구선수 출신 윤석민과 그의 모친이 게스트로 출연했습니다.


윤석민의 모친 김정열 씨는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는) 왜소하고 좀 작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석민이 친구 엄마가 '투수들은 산삼을 먹어야 힘을 쓴다'고 하더라. 산삼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더라. 그때부터 '산삼은 내가 캐서 먹여야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운을 뗐답니다.

이어 "지인이 산에 같이 가자고 해서 산삼 있나 봐야지 했다. 갔더니 산삼 같은 잎이 있는 거다. 클로즈업되는 것처럼 보이더라. 캐려고 하다 보니까 뱀이 한 마리 있더라. 저는 뱀을 안 무서워 한다. 나뭇가지로 집어서 던졌더니 죽은 척 하더라. 독사니까 물리면 죽으니까 무섭지 않나. 오나 안 오나 보면서 그 자리에서 여섯 뿌리를 캤다. 정말로 어머니 아버지 한 뿌리 드리고 아들(윤석민)을 다 먹였다. 힘이 좀 날까 싶어서"라고 해 놀라움을 자아냈답니다.

윤석민은 "물론 산삼이 귀하긴 하지만 아침에 눈 뜨면 입으로 산삼이 들어온다. 산에 가면 기본 열뿌리씩 캐오시는 거다. 구하기 힘든 건데 엄마는 너무 쉽게 캐오시니까"라며 나름의 고충을 토로했다.

윤석민 "맘고생하는 부모님 보며 재기 다짐"
-2011. 11. 8

지난 2011년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가 된 윤석민은 트로피를 손에 들고 눈물을 흘렸다. 한 해 전 야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고민했었답니다.

컴퓨터를 켜면 온갖 험한 욕설이 쏟아졌다. 가슴 아팠지만 아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끝없이 용기를 준 부모님을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7일 MVP투표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 하모니볼룸. 한 중년 부부가 설레는 표정으로 객석에 자리했다 이날 주인공 KIA 윤석민의 아버지 윤달중 씨와 어머니 김정열이랍니다.


윤석민은 부모님께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협찬 받은 슈트와 구두로 멋을 내고 아버지 어머니를 시상식장으로 모셨다.

함께 후보에 오른 삼성 오승환과 최형우의 기록도 빼어났기 때문에 혹여 MVP 수상에 실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열심히 던졌고 동료들 덕분에 좋은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자신감을 갖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또 언제 이런 모습 보여드릴 수 있을까 싶어 부모님을 초청했답니다.

모든 공식인터뷰와 사진촬영을 마치고 잠시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윤석민은 다시 부모님에 대한 말이 나오자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지난해 어려운 일이 많았었잖아요. 큰 잘못도 했고, 부모님이 많이 힘드셨어요. 올 한해를 시작하며 각오했어요. '연말에는 꼭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자.'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기쁩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윤석민은 지난 시즌 스스로 부진에 화를 참지 못하고 라커를 주먹으로 내리치다 손가락 골절 부상을 당해 가장 중요한 순간 그라운드를 떠나야했다. 반성 또 반성을 하고 돌아왔지만 롯데 홍성흔이 공에 맞아 손등이 부러지면서 감당하기 힘든 비난을 받아야했다.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더 찢어졌다. 고교시절 경기도 구리에서 분당까지 출퇴근하며 아들을 뒷바라지 했던 어머니, 아들을 위해 산삼까지 캐온 아버지였답니다.

윤석민은 "홀로 떨어져 사는 아들 걱정이 많으신데, 지난해는 너무 힘들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했어요. 모레(9일) 일본으로 마무리훈련 떠나기 때문에 내일은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진정으로 보내고 가족들과 저녁도 함께 하고 싶어요." 부모님의 이름으로 값진 상을 받은 아들은 어느 때보다 뿌듯하게 웃었답니다.

And

권재관♥' 김경아 "부부싸움하면 시아버지가 미안하다 사과" 눈물
- 2021. 8. 1

‘1호가 될 순 없어’ 김경아가 시부모님에게 사랑 받는 며느리 모습을 보였다.

1일 저녁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1호가 될 순 없어’에서는 홍윤화-김민기 부부가 민찬기, 이국주를 이어주려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권재관과 김경아는 아침부터 티격태격했다. 김경아는 아침부터 보쌈을 만드는 권재관에게 잔소리를 쏟아냈고, 권재관은 예능 프로그램 결과를 스포일러하는 김경아를 타박했다. 특히 김경아는 “스포일러는 당신이 더 대박이다. 배정근에게 ‘어벤져스’ 쿠키 영상까지 스포일러하지 않았느냐”고 저격해 웃음을 자아냈다. 권재관은 “평소에서 아내가 스포일르를 일삼는데 짜증난다”고 불만을 토로했답니다.

이때 집에는 딸 지율이와 함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찾아왔다. 김경아는 “7년 동안 같이 살다 분가한 지 1년이 안됐다. 그때부터 비밀번호는 공유했다. 스케줄이 일정하지 않아서 시부모님께서 아이를 맡아주신다. 비밀번호 공유가 자연스러워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경아는 시부모님에게 자연스럽게 반말을 해 눈길을 끌었다. 권재관은 “어머니에게 언니라고 할 때도 있었다. 딸 하나 생겼다고 좋아하신다”고 이야기했다.

시어머니는 부엌과 세탁기를 보며 며느리에게 일하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했다. 시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분리수거를 도왔다. 김경아는 “내가 1호가 되지 않은 이유는 시부모님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시어머니의 말투에서는 권재관 같은 마라맛의 기운이 느껴져 웃음을 자아냈답니다.


시어머니는 권재관의 요리 퍼포먼스에 마라맛 돌직구를 쏟아냈다. 중식도를 쓰는 모습을 보며 “이거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플레이팅 하는 모습에는 “수를 놓고 있냐”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권재관은 “내가 어머니를 닮은 거 같다”고 마라맛 핏줄을 인정했다.

김경아는 시어머니와 막걸리를 마시며 수육을 먹었다. 권재관은 “고부간의 장벽은 없다. 며느리 타이틀 내던진 지 오래”라고 말했고, 김경아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해본 적도 있는데 시어머니가 도리어 거부하셨다. 그게 10여년이 지나니까 친정 어머니보다 거리낌이 없어졌던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 권재관에 대해 “쓸데 없이 화를 낸다. 그게 단점인데, 나를 닮았다”며 “귀한 외동이라고 무조건 다 들어주고 키웠다. 결혼해서 10년 만에 나았다. 낳았을 때 목 놓아 울었다”고 말했다. 시아버지는 “돌잔치 때 먼 일가친척까지 모두 왔다. 다들 누구 환갑이냐고 할 정도였다”고 이야기했다. 권재관은 “집 마당 한구석에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모래산이 기억난다”며 “우리 집에는 바나나 나무가 있었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알고보니 권재관의 아버지가 금은도매를 했었던 것. 비데, 영사기가 있었던 것도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던 중 권재관의 이름은 족보에 ‘권구복’으로 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구자 돌림이 항렬이었던 것. 권재관은 “호적에는 권재관, 족보에는 권구복으로 되어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경아는 “권구복이었다면 결혼을 생각해봤을 것 같다”고 말했고, 권재관은 “우리 애들도 몰랐던 사실이다”고 말했답니다.

또한 시부모님이 김경아가 숙취로 고생할 때 꿀물까지 타준 영상이 공개돼 웃음을 자아냈다. 김경아는 “남편과 싸우면 시아버님이 오셔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너같이 예쁜 아이를 내 아들이 마음 아프게 했다’며 사과를 하신다. 그러니 화해를 안 할 수가 없던 것이다”고 웃었습니다.

권재관 “母, 연예인 뒷얘기 내게 물어봐, 난 그 급 아냐”(동치미)
- 2024. 2. 2.

개그맨 권재관의 모친이 아들에게 연예인 뒷얘기를 물어본다고 밝혔다.

2월 1일 공개된 MBN '속풀이쇼 동치미' 선공개 영상에는 개그맨 권재관과 그의 모친이 게스트로 출연했습니다.


권재관의 모친 한순자 씨는 "하찮은 얘기도 물어보면 한 번에 잘라버린다. '아이 시끄러.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 한다. 그냥 대답을 안 해준다. 무조건 내 말이라면 자른다"며 아들에게 서운함을 표했다.

"뭘 물어보시냐"는 박수홍 질문에는 "누구는 어떻게 됐어?"라고 답했고 권재관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며 억울함을 표했답니다.

박수홍은 "방송 들어가기 전에 여사님이랑 얘기 나누는데 '재관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다. 얼마나 수홍 씨 얘기를 많이 하는지 모른다. 괜찮죠?' 하는데 내가 재관이한테 얘기를 많이 안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자 권재관은 "연예면에 기사가 올라오면 내가 다 아는 줄 안다. 그 사람이 뭘 먹고 사는지 그 사람이 왜 저기서 싸우는지 내가 어떻게 아냐. 내가 그 급이 아니다. 나도 그런 사람들 만나보고 싶은 마음입니다"고 토로했습니다.

And

출생 나이 생일
1950년 1월 3일

사망일
2024년 1월 31일 (향년 74세)

학력사항
~1975.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리학석사

경력사항
2003.03.~
녹색대학 대학원장
2003.03.~
녹색대학 풍수풍류학전공 교수
1988.~1992.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한국적 풍수 이론·사상 세운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 별세
- 2024. 2. 1.

= 한국의 풍수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연구한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1950년생인 고인은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국토개발원 주임 연구원을 거쳐 전북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를 지냈으나, 서울대로 간 지 4년 만에 교수직을 내던지면서 학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인은 이후 우리 땅에 깃든 기운에 주목하며 풍수 이론을 연구하고 대중 강연에 나서면서 우리 식의 풍수학을 구축한 연구자로 널리 인정받았답니다.

그는 40여년간 풍수에 열중하면서 개념과 다양한 견해를 정리했고, 우리 국토 현실을 반영한 '도시풍수' 개념을 내놓으며 땅의 변화를 고찰했다.

지난 2007년 낸 에세이집 '도시풍수'에서는 "현대에 유용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풍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새로운 풍수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묏자리의 길흉을 점쳐 판단하는 풍수를 일컫는 음택풍수(陰宅風水)에 반대하면서 명당은 사람이 자연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지론을 설파했다.

2004년에는 한 계간지에 기고한 '풍수로 본 청와대 비극과 천도 불가론' 글을 통해 당시 논의 중이던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고인이 남긴 '한국의 자생 풍수', '한국의 풍수지리', '한국의 풍수사상', '사람의 지리학', '땅의 논리 인간의 논리' 등의 저서는 한국의 풍수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에는 건강 문제로 거의 활동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답니다.

유족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몇 년 전 건강이 안 좋아지신 이후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지 못하셨다. 최근까지 지병을 앓으셨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 VIP 1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3일 예정이며,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랍니다.

And

출생 나이 생일
1993년

신체 키
176cm, 67kg

학력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 학사)

아침마당' 조준 "학자 집안서 가수 꿈 반대, 서울대 성악과 진학"
- 2020.12.1

엘리트 가수 조준이 나훈아의 '테스형'을 부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저격했습니다.


16일 방송된 KBS1 '아침마당'은 '전국이야기대회 도전 꿈의 무대' 코너로 꾸며졌다. 3승에 도전하는 최대성과 새롭게 우승에 도전하는 노수현, 백강산, 조준, 강지민이 출연했다.

이날 조준은 "제 목표는 1승이나 5승이 아니다. 부모님께 내 노래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고 말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답니다.

이어 "학창 시절 내내 꿈이 없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수라는 꿈을 꾸게 됐다. 저희 집은 부모님이 모두 학자시고 형도 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분위기상 공부 아닌 다른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 보니 대중 가수를 하겠다는 제 꿈은 어처구니없는 반항으로 여겨졌다. 결국 편지 1통을 쓰고 가출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워낙 돌아다녀서 그런지 관심이 없으시더라. 결국 두 달만에 귀가했다"고 말을 전했습니다.

또한 조준은 "결국 부모님은 성악까진 허락해주셨다. 그래서 고3 때 성악을 공부해 서울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여전히 클래식은 어렵고 저와 맞지 않는다"며 "지금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행사 무대를 다니는데 부모님은 저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늘 절실하게 노래 부를 테니 부모님이 저를 믿어주셨으면 정말로 좋겠다"고 말했답니다.

이어 조준은 타고난 성악 발성으로 노래를 매끄럽게 이끌어내며 나훈아의 '테스형'을 불러냈다. 노래가 끝난 후, 진행자 김재원은 "어머니의 마음 뿐만 조준한 게 아니라 시청자들의 마음 또한 조준했다"고 말했다. 이에 조준은 "저는 비행기입니다"라며 "어머니 아버지가 제 꿈의 길에 활주로가 되어주셨으면 좋겠다" 라고 답했습니다.

And

출생 나이 생일
1982년 5월 18일 (41세)

신체 키 몸무게
186cm | 70kg
가족관계
부모님, 

학력
영훈고등학교 (졸업)
대진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대진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 / 석사)

소속사
블러썸 엔터테인먼트

데뷔
2004년 SBS 드라마 《매직》

병역
대한민국 국군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 병장 만기전역

임주환 '어쩌다사장3' 속 묵묵한 '열일'…"더없는 행복" 종영 소감
- 2024-02-01

배우 임주환이 tvN '어쩌다 사장3' 종영 소감을 전했다.


임주환은 1일 소속사 블러썸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어서 '어쩌다 사장3'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과분한 영광이었고 더없는 행복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훌륭한 스태프분들과 제작진, 멋진 출연자분들 고생 많이 하셨다"며 함께 고생한 스태프와 동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시청자 여러분의 사랑도 정말로 감사드린다"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1년이 되기를 바라겠다"고 덧붙이며 소감을 마무리했답니다.

임주환은 종영까지 1회 남은 '어쩌다 사장3'에 출연해, 차태현 조인성 등과 바다 건너 미국에서 슈퍼를 함께 운영했다. 그는 묵묵히 할 일을 해내는 모습과 센스 넘치는 면모로 시청자들의 눈길 끌었다.

특히 임주환은 바쁜 마트 영업과 식당 운영까지 바쁜 와중에도 시종일관 다정한 미소로 손님을 응대해 훈훈함을 자아냈다. 또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 따뜻한 수제비를 아침으로 준비하고, 높은 곳에 메뉴를 붙이려는 김아중에게 무심한 듯 의자를 가져다주는 모습으로 드라마가 아닌 일상에서도 '유죄 인간'의 면모를 한껏 보여줬답니다.

훤칠한 비주얼과 엉뚱한 매력을 선보이며 '어쩌다 사장3' 속 든든한 지원군으로 제 몫을 다 한 임주환의 2024년 행보가 더욱더 궁금해진답니다.

임주환, '꽃보다 남자' 김범 형으로 출연
- 2009. 2. 25

탤런트 임주환이 KBS 2TV 월화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합류한답니다.


임주환은 다음 달 2일 방송되는 17회에 F4 멤버 소이정(김범)의 친형인 소일현 역으로 등장한다. 소이정과 함께 전도유망한 예비도예가였지만 대학 시절 도예를 접고 집안에서 나와 바리스타로 명성을 쌓아가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보헤미안 캐릭터랍니다.

제작진은 "소일현은 F4의 화려한 모습과는 다른 자유로운 인생을 즐기는 인물"이라며 "'꽃미남'을 연상시키는 얼굴에 남성미까지 가진 임주환의 이미지가 일현 역에 제격이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임주환은 영화 '쌍화점'에 미소년 친위부대 건룡위 36인 중 한 명인 한백 역으로 출연했으며 올해 방송될 예정인 사극 드라마 '탐나는 도다'의 주연도 맡았답니다.

And

복길엄마 김혜정 “‘전원일기’ 촬영지에 20년째 정착, 1천여평 가꾸며 산다
- 2024. 1. 30

복길엄마' 김혜정이 "20년째 '전원일기' 찍는 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1월 30일 오전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에는 드라마 '전원일기'의 복길엄마로 유명한 배우 김혜정이 출연했다.


이날 김혜정은 "실제로 전원 생활 중"이라면서 "'전원일기' 마지막 촬영 장소에 터를 잡고 20년 넘게 생활 중이다"고 말해 깜짝 놀라게 했답니다.

"'전원일기'를 혼자서 써내려가고 있는 거냐"는 말에 김혜정은 "워낙 자연을 좋아하고 연기할 때 외에는 연기자라는 사실을 잊고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해서 그렇게 생활 중"이라고 말했다.

'전원일기' 때문에 정착하게 된 거냐는 질문에는 "초등학교 때 시골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싫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다시 자연이 그리워졌다. '전원일기' 끝날 때쯤 이장님이 '좋은 집이 나왔는데 보겠느냐' 했는데 너무 좋아서 두말않고 하겠다고 했다. 2002년에 그 곳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충은 없냐"는 말에는 "무한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계절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고통스러움을 견디면서 지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제가 돌보는 공간이 1천여 평은 된다. 비가 한 번 오고 나면 잡초가 무성하게 돋아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계속 움직이는데 돌아보면 표도 안 난다"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 김혜정의 남편 배우자는 누구?

'복길이 엄마' 김혜정, 황청원 시인과 2003년 이혼
- 2008. 7. 29

 '복길이 엄마'로 불리는 탤런트 김혜정이 지난 2003년 남편과 이혼한 사실을 방송을 통해 처음 밝혔습니다.


29일 SBS '이재룡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출연한 김혜정은 시인 황청원씨와 이혼해 현재 동부이촌동 집에서 혼자 사는 자유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이혼 후에도 전 남편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는 김혜정은 "이혼을 주제로 한 방송을 하기 싫어 일부러 토크쇼에는 출연하지 않았다"며 "실제로는 11년 전부터 혼자 지내고 있었던 상황이다"고 말했답니다.

김혜정은 결혼 15년 만인 2003년 승려 시인 출신의 황 씨와 이혼한 후 조용히 연기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김혜정은 1981년 '미스 MBC'로 데뷔해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23살 어린 나이에 '전원일기' 복길이 엄마로 출연하며 젊음을 감추는 작은 희생도 감수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김혜정은 현재 스포츠와 요리, 그림 등을 즐기며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김혜정은 방송을 통해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놓으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연기자 김혜정, 한 여자로서의 김혜정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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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나이 생일
1986년 9월 24일
고향 출생지
경기도 부천시

학력
중앙대학교 대학원 경기민요 석사
중앙대학교 경기민요 학사

경력
2012.06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이미리 “경기민요 이수자 되려 수없이 산공부, 폭포수 뚫어야”(아침마당)
- 2024. 1. 8

가수 이미리가 경기민요 이수자가 되기 위해 산공부를 다녔다고 밝혔다.


1월 8일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 코너 '명불허전'에는 '용이 될 스타' 특집으로 꾸며져 코미디언 이용식-가수 원혁, 트로트 신동 최진욱, 가수 신승태-이미리, 코미디언 장용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이수자라는 이미리는 "전수자에서 이수자가 되려면 산공부를 수없이 다녀야 한다. 폭포수에 내려가서 계속 노래를 부른다. 내 목소리가 폭포수를 뚫고 찔러서 내 소리가 완성이 돼야 해서 밥 먹고 소리하고 울면서 소리하고 앉았다 섰다 하면서 소리하고 그랬다.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서 이수자가 됐다"고 말했다.

신승태는 "힘들지만 그만큼 기본기가 있으니까. 저희가 추운 겨울 야외 공연을 할 때 손은 떨어도 소리는 떨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미리 “원래 꿈은 아이돌, SM JYP 오디션서 계속 떨어져
- 2023. 9. 25

9월 25일 방송된 KBS 1TV 코너 '명불허전'은 '국악 스타의 재발견'으로 꾸며진 가운데 국악인 강길원, 가수 이미리, 강문경, 김다현, 국악인 조엘라가 출연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면서 민요를 했다는 이미리는 "자면서 노래를 하고 웃다가 또 노래를 하니까 엄마가 몽유병인 줄 아셨다더라. 원래 부모님이 제가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는데 잠꼬대를 국악으로 하니까 '얘는 놔줍시다. 시킵시다' 하셨다더라. 그래서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제 꿈은 사실 아이돌 가수다. 기본기를 탄탄하게 하려고 국악을 했다.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더라. 보아, S.E.S. SM 쪽으로 너무 가고 싶었는데 너무 예쁘지도 않고 너무 안 예쁘지도 않고 애매한 거다. 실력파로 가자 해서 JYP 오디션을 봤는데 다음날 팝송을 해오라고 했는데 너무 안 외워지더라. 민요는 잘 외워지는데 영어는 안 외워지더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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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로 15년, 화가로 35년… 정미조 “눈물 흘렸지만 후회는 없다”
- 2023. 5. 15

1981년 서른두 살 정미조(74)는 프랑스 파리13구의 8층 옥탑방에서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개여울’ ‘그리운 생각’ ‘불꽃’ 등으로 당대 가요계를 풍미한 인기 가수입니다.

그 모든 걸 버리고 1979년 돌연 은퇴 후 오른 미술 유학길이었다. 낯선 프랑스어 강의를 녹음해 들으며 사전을 뒤적이다 홀로 지쳐 잠들기를 2년째. 어느 날부터 그의 눈에 창밖 풍경이 들어왔다.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 뒤 센강, 노트르담 성당, 루브르박물관, 에펠탑 위로 캄캄한 고요가 내려앉을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그가 오는 17일부터 10월 31일까지 모교인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여는 전시회 ‘이화, 1970, 정미조’의 관통 주제를 ‘야경’으로 택한 이유이다. 최근 서울 서초구 개인 화실에서 만난 정미조는 “유학을 후회한 적 없지만 당시 자꾸 밤마다 눈물이 나더라. 내가 속할 곳이 저 야경 어딘가에 있단 생각이 들고서야 위안이 찾아왔다”며 그때를 회상했답니다.

이번 전시에는 그 야경을 캔버스로 옮겨 모나코 몬테카를로 국제그랑프리 현대예술전에서 수상한 ‘몽마르트르’(1981)를 비롯해 ‘질주’(2004), ‘서울 야경’(2012~2014) 시리즈 작품 등을 5개 전시실에서 선보인다. 그의 대표작인 거울 자화상, 인물화, 각종 드로잉, 데뷔 때부터 낸 음반 초판 커버, 정미조가 입었던 앙드레김의 드레스 실물 등도 함께 전시된다. 총 100여점 작품 중 일부는 모교에 기증됐답니다.

정미조는 “전시실에는 내 히트곡들도 튼다. 본래 80세에 하려던 전시”라고 했다. “과거 피아노를 전공하려 했던 고 백남준 선생이 전시 개막식에서 자주 연주한 걸 보고 나도 내 예술세계를 하나는 물감, 하나는 소리로 전해야겠다 했죠. 그런데 최근 조금씩 정말로 눈이 불편해졌어요. 더 늦기 전 내 모든 걸 보여주자 했지요.”라고 전했습니다.

1972년 4월 TBC TV ‘쇼쇼쇼’로 데뷔한 그는 170cm 큰 키에 서구적 외모, 시원한 성악풍 발성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화여대 서양화과 2학년 때 모교 축제 ‘메이데이’에서 노래했다가 당시 초대 가수 패티김의 눈에 든 일화도 유명하다. “노래 끝나자마자 그분이 절 불렀어요. 너 노래 참 잘한다고. 당시 최고 인기의 ‘패티김쇼’ 게스트로 매주 초대한다 하셨죠.” 하지만 재학 중 결혼 금지, 미스코리아 참가 금지 등 외부 활동을 엄히 금했던 학칙이 그의 데뷔를 늦췄고, 대신 당시 드물던 ‘학사 출신 여가수’ 별칭을 안겼다.

이후 신인가수상, 연말 10대 가수상, 동경국제가요제 최우수가창상 등을 거머쥐며 7년간 가수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갑자기 1979년 TBC에서 1시간짜리 가요계 고별 방송을 해 대중에게 충격을 안겼다. 당시 이장희가 써준 ‘휘파람을 부세요’, 송창식이 써준 ‘불꽃’ 등이 이유 없이 방송금지 당한 게 이유일 거란 추측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정미조는 “그저 ‘미술’이 내 본진이라 생각했을 뿐”이라고 했다. “제대로 된 밴드 반주에 좋은 마이크로 노래해 보고픈 욕구를 채우고 나면 다시 미술을 해야겠구나 했었죠. 그런데 자꾸 히트곡이 생기고, 방송이 이어지더군요"라고 전했답니다.

믿었던 이의 배신도 그의 음악 활동을 계속 지치게 했다. 정미조는 “큰 인기에도 모은 돈이 거의 없어 파리 유학 시절 빠듯하게 지냈다”고 했다. 친했던 여성 매니저에게 모든 수익을 일임한게 화근이었다. “반포의 42평짜리 아파트를 저 모르는 사이에 진정으로 처분했더군요. 제 활동 수익으로 다른 신인 가수를 키우고요. 아버지가 김포에서 큰 양조장과 극장을 하셨지만, 손 벌리기 싫었어요. 남은 재산을 정리해 딱 유학 비용만 남겼죠. 그래도 단 한 푼도 돌려받지 않았어요. 가족들도 부르지 않았는데 그 언니가 유학길 배웅을 나와 펑펑 울더군요. 난 홀가분했지만”라고 전했습니다.


이후 파리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3년 유학을 마친 그는 귀국 후 결혼을 했고, 22년간 수원대 서양화과 교수로 원하던 미술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2016년 37년 만의 가요계 복귀 음반 ‘37년′을 발매했다. “안 본 사이 녹음 기술이 많이 발전한 거예요. 그걸 맛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죠.” 1979년 고별무대 게스트로 딱 한 번 스치듯 그의 노래를 들었던 가수 최백호가 복귀를 도왔다. “우연히 한 전시장에서 마주쳤는데 그 좋은 목소리로 왜 노래 안 하냐며 좋은 음반 제작사를 소개해 줬어요.”

그 인연으로 최백호는 17일 오후 4시 이대 박물관 내 시청각실에서 이번 전시 개막식을 겸한 미니콘서트에서 정미조와 함께 노래를 하기로 했다. 이 개막식에는 고 앙드레 김의 아들 김중도 디자이너도 참여할 예정이다. 그의 활동기 드레스 대부분을 앙드레 김이 만들었기 때문이랍니다.

“우연히 방송에서 만나 ‘선생님 드레스가 너무 아름다워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도 감히 입을 수 있나요’ 했더니 웃으며 ‘숍으로 오세요’라더군요. 어린 마음에 그 방송 출연료 봉투를 들고 다음 날 당장 가서 드렸어요. 제값에 턱도 없이 부족했던 금액인데 군말 없이 드레스를 내주셨죠. 영국, 미국 대사 부인들에게 옷을 선물하며 민간 외교를 자처하고, 고아원 기부까지. 베풀기만 해서 돈도 별로 없던 분이었죠. 그렇게 착한 사람, 전 처음 봤어요.”라고 전했습니다.

정미조, 나이 뛰어넘는 열정…‘가수→화가의 삶’ 프로필 공개
- 2023. 5. 9

가수 정미조가 나이를 뛰어넘는 열정을 자랑하며 프로필을 공개했다.

9일 오전 방송된 KBS1 ‘아침마당’의 화요초대석에는 가수 겸 화가 정미조가 출연해 오랜만에 무대를 꾸몄다.


1972년 데뷔해 가수로 활동하다 30대 이후로는 화가로 살아온 정미조는 “제 작품을 모교인 이화여대에 몇 십점을 기증했다. 이번에 기증 특별전을 하게 됐다”라고 근황을 전했답니다.

이어 “기증 전에 저의 작품뿐만 아니라 음악세계도 같이 보여주는 특별전시회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20년 전에 백남준 선생님께서 본인 전시 오프닝 때 피아노를 치는데 너무 멋있는 거다. 또 하나의 그분의 예술성을 느끼겠더라. 두 가지를 같이 보여줄 수 있는 건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그때부터 생각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답니다.

특히 정미조는 이번 전시회에서 오픈식을 한 이후 미니콘서트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그는 “일반 공연장처럼 시스템을 갖췄다. 제가 1시간 가량 미니콘서트를 연다. 게스트로는 최백호 선생님이 나오신다”라며 “편안하게 오셔서 저의 예술세계를 모두 감상했으면 좋겠다”라고 귀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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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김묘성의 학력 대학교 나이 등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기사입니다. 결혼 남편 여부에 대해서는 미공개네요.

서울여대 후배들을 위해 “언니들이 돌아왔다!”
-2014-10-23

서울여자대학교(총장 전혜정)에 23일, 특별한 이들이 찾아왔다. 서울여대를 언론 분야에서 다양하게 일하고 있는 동문들이 후배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기회를 갖고자 모교를 찾은 것이랍니다.


‘언니들이 돌아왔다’라는 이름으로 열린 오늘 토크콘서트에는 ‘서울여자대학교 미디어 종사자 동문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언론계 종사 동문들 중 7명이 참여했다.

이날 후배들을 위해 모교를 찾은 이들은 박혜령 KBS PD(농촌과학과 78학번), 박정숙 방송인(경영학과 89학번), 조수진 전 극동방송 PD(문헌정보학과 91학번), 구은영 MBC 아나운서(경영학과 00학번), 김혜민 YTN 라디오 PD(언론영상학전공 00학번), 김묘성 Y Star 기자(사회사업학과 02학번), 유현정 ESS 프로덕션 PD(언론영상학전공 03학번) 등이랍니다.

이들은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감회에 젖어 대학 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학창 시절 이야기와 꿈을 찾고 이루기 위한 노력 등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참석한 재학생들은 대학 생활, 진로 결정 및 준비, 사회생활, 언론계 현장의 이야기 등 궁금한 점을 물어보며 함께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한편 이번 토크콘서트는 22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되고 있는 취업박람회의 일환으로 진행됐습니다.

"대선에서 왜 졌냐하면"
- 2023.04.10

이재명 대통령 후보 경선캠프 영상팀장 / 본선캠프 현안대응 3팀장 김묘성 씨

2000년대 중반 DMB 아나운서 시절부터 유튜브가 대세가 된 지금까지, 계속해서 무언가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하는 일을 해오신 것 같습니다. 매체 환경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그에 맞춰 변신하시기도 했답니다.


2005년에 지상파DMB 아나운서를 맡으며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2007년부터 케이블TV로 진출해 경제전문채널에서 기자 겸 앵커로 활약했던 것입니다. 한 4년 정도 일했고요. 2011년부터는 연예 전문기자로 일했습니다. 아마 이 시절의 저를 기억해 주시는 분 들이 많으실 거예요. 2017년 초까지는 매체에 소속돼서 일했고 이후 2년 정도는 소속 없이 프리랜서로 일했습니다. 방송 출연도 활발하게 했었고, ‘잡스러운연애’, ‘수다맨들’ 등 팟캐스트에도 출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18년 말부터는 경기도 홍보미디어담당관실 영상미디어팀장으로 일했고, 지난해 이재명 후보 대선캠프에서도 일했던 상황입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기자님 활동기간이 매체 환경 급변동기와 겹치는 것 같아요. TV, 라디오, 신문 등 올드미디어 영향력이 줄어들고 뉴미디어 영향력은 늘어났던 기간입니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수많은 매체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했고요. 기자님은 시기마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변화에 잘 적응하신 것 같은데, 시기마다 변화를 정말로 예측하신 것인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답을 알고 있으면 쉽지만, 당연히 정답을 알 수는 없으니까요. 텔레비전 시청률도, 신문 열독률도 떨어지는 상황. 대중에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사람은 그때그때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 그 시기 ‘뉴’미디어라는 말뜻 그대로 새롭게 만들어진 매체는 다 모두 ‘스타트 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잘 적응하고 변화하려고 애를 쓰기는 했지만 예측하고 움직였던 것은 아닙니다.


매체 환경이 빠르게 바뀌니, 필요한 역량도 달라지고 또 일하시면서 “이게 더 필요하구나”하는 것들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처음 지상파DMB 아나운서로 일하다가 잠깐 더 작은 매체로 옮긴 적도 있었는데, “뉴스를 직접 쓰고 직접 그 내용을 전달할 수 있어야겠다”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써 주는 내용을 읽기만 해서는 제대로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고요. 종편 등장 전, 경제 전문 케이블 채널로 옮기게 된 것도, 기자 역량도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연예 전문 매체로 옮기게 된 것은 어떤 이유였나요? 물론 연예 기자 시절에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지기도 하셨던 것이지만요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가장 큰 영향을 줬습니다. 그 경제매체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매체였는데요. 노 전 대통령 죽음 후 선배들이 보인 행태 때문입니다. 그 사건 전까지는 (보수 매체 구성원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으면, 인격적으로나 일 처리 능력에서나 존경할 만한 훌륭한 선배들이었는데. 그 선배들이 당시 분향하는 시민들 보고 “세상 참 좋아졌어”라며 혀를 끌끌 차는 거예요. 정치 성향을 떠나 직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 슬픔에 빠져 분향하는 것을 보며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할까요? 정치적 성향의 차이도 있었고 회사 내부 사정도 좀 시끄럽기도 했고요. 이런 내면적, 외부적 갈등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경계가 많이 사라져서 이상한 것도 없지만,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각 영역이 확실한 상황에서 연예 기자로의 변신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왜 ‘연예’여야 정말로 했는가?

주변 지인들이 연예부 기자를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도 오고 연락도 오고 했어요. 그러면서 “아예 정치랑 아무 상관 없는 데로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연예부 기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당시 나이가 20대 후반이셨는데, 왜 서른이면 압박감이 있잖아요. 우리 사회 특성상 그 압박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두드러질 것 같답니다.

그때 아니면 결정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아직 20대 때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나이 들수록 어려워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 그러면서 결정하게 됐지요. 그렇게 연예 전문 매체에서 활동하게 되고 5~6년 정도 연예 전문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기자님을 처음 뵌 것도 그때였습니다. 이게 또 영역이 달라지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을 텐데 적응이 참 빨랐던 것 같답니다.

연예기자라고 하면 아무래도 원래 가지고 계신 고정관념이 있으셨을 텐데 외부에서 보는 시선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속한 매체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제가 더 바쁘게 취재해야 기사가 나오는 구조였어요. 1주일이나 2주일 정도 뻗치기 해서 기사 한 건 내기도 하고…. 저는 열애설 기사를 거의 쓰지 않았어요. 정말 사건 사고에 관한 취재를 발로 뛰며 했습니다. 주로 법원, 경찰서가 취재현장이었고요.. 그래서 기자로서는 되게 즐거웠습니다. 보람도 있고요. 연예 전문기자 생활 후반부에는 소속 매체 없이 프리랜서로 활동한 적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당시는 힘들었는데 돌아보면 그것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지상파와 더불어서, 종편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요... 이게 이를테면 ‘저자직강’ 같은 연예계 이슈 소개를 하신 셈이군요. 그런데 보통 다른 분들은 취재만 하거나, 전달만 하는 데 기자님은 두 가지 영역을 모두 경험하셨으니…. 기자 김묘성으로서 취재한 내용을 아나운서 김묘성이 소개하는…. 그러한 경험들이 지금 유튜브 방송 진행도 자연스럽게 하실 수 있게 하게 했답니다.

예 맞습니다. 지금도 TV 방송 출연을 하고 있는데, 방송은 사실 기본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거든요. 과거 앵커로 매일 방송을 진행하면서 기본기를 체득할 수 있었고, 거기에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썼던 경험은 제 인생에 더할 나위 없는 플러스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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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매' 김선영 "♥이승원 감독, 감독·작가로 존경해
- 2021. 1. 20

배우 김선영이 남편 이승원 감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김선영은 20일 오전 온라인을 통해 영화 '세자매'(감독 이승원)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세자매'는 겉으로는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가식덩어리, 소심덩어리, 골칫덩어리인 세 자매가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의 매듭을 풀며 폭발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김선영은 소심덩어리 첫째 희숙을 연기했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이승원 감독은 김선영의 남편이다. 두 사람은 극단에서 오랜 시간 같이 작업을 해왔으며, 이번 영화에서도 감독과 배우로 함께했다. 

김선영은 남편과의 영화 작업에 대해 "남편이랑 작업을 많이했다. 제가 연기디렉팅을 하고 남편이 작품을 쓰는 연극 작업부터 10년이 넘어서 손발이 잘 맞다. 눈빛만 봐도 말만 해도 뭘 원하는지 아는 정도로 호흡이 잘 맞다"며 "매체가 영화고 좀 달라서 좀 시스템이 다르긴 해도 연출과 배우로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잘 했던 상황이다"고 말했답니다.

앞서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 문소리는 실제 부부인 이승원 감독과 김선영의 격렬한 토론에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선 "언니 기준에서 격렬한 거다. 저희는 자연스러운 대화다. 그냥 말투 때문에 격렬하게 보였던 것 같다"며 "문소리 언니랑 장준환 감독님이 대화하는 게 저희 부부랑 굉장히 다르다"고 짚어 웃음을 줬습니다. 

이승원 감독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팡파레'에서 연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선배 배우'로서 김선영은 이를 어떻게 봤을까. "저는 남편한테 정확하게 얘기했다. 연기 하지 말라고"라고 운을 떼 웃음을 안긴 그는 "최근에도 저 모르게 어디 가서 또 뭘 출연하고 왔다더라. 나한테 비밀로 하고.  '어디 가서 또 연기하고 왔어?' 했더니 '아니 뭐, 잠깐' 이러더라. 이게 제 평가다. 연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답니다.


남편 자랑을 해달라는 요청에는 "감독, 작가로서는 굉장히 존경한다. 저희 신랑 연극을 한번 보셨으면 좋겠는데 보면 기절할 거다. 정말 재밌던 것이다. 진짜 잘 만든다. 이승원 감독을 감독으로서, 작가로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해 훈훈함을 안겼다.

'씨네타운' 문소리 "이승원 감독♥김선영, 격렬한 토론이 일상화"
- 2021. 1. 21

씨네타운' 문소리가 현장에서 지켜본 이승원 감독, 배우 김선영 부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21일 방송된 SBS 파워FM '박하선의 씨네타운에서는 영화 '세자매'의 이승원 감독, 배우 문소리가 출연했습니다.

이날 문소리는 "저희 부부와 비슷해 보이지만 분위기가 굉장히 다르다. 이승원 감독과 김선영은 오랫동안 극단 운영을 하고 작업을 같이 했기 때문에 격렬한 토론이 정말로 일상화된 집안"이라고 설명했답니다.

이어 "오늘 안에 화해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작품에 대해 불꽃을 튀기기도 한다. 그 주제가 끝나면 다시 돌아온다"고 말했답니다.

장준환 감독과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문소리는 "저희 부부는 그렇게 격렬하게 토론하지 못하고 시간을 갖는 편"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소리와 김선영, 장윤주가 출연하는 '세자매'는 겉으로는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가식덩어리, 소심덩어리, 골칫덩어리인 세 자매가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의 매듭을 풀며 폭발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월 개봉 예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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