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6명 순직한 '홍제동 화재 참사'.. 소방관들은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을 입었다
- 2022. 11. 11

 ‘꼬꼬무’가 소방관 6명의 목숨을 앗아간 홍제동 화재 참사를 다룬 가운데, 소방관 처우 사실이 충격을 안겼답니다.

1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2001년 3월 4일 새벽 3시경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벌어진 화재 참사를 다뤘다.


이날 방송에는 장성규, 장현성, 장도연이 이야기꾼으로 등장했고 배우 최영준, 그룹 오마이걸 유아, 방송인 안현모가 출연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고 경위는 이렇다. 소방대원들은 홍제동 다가구 주택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소방차는 화재 현장 약 150m를 남겨두고 멈춰섰다. 불법 주정차 때문이었다. 도로 양쪽이 차들로 꽉 막혀 진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시가 급한 대원들은 무거운 장비를 들고 현장까지 뛰어가야 했다.

화재 현장에 있던 집주인이 큰 소리로 아들이 안에 있으니 구해달라고 외쳤다. 소방대원들은 집주인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어 1차 수색을 펼쳤다. 하지만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답니다.

2차 수색을 위해 6명의 대원이 다시 불이 나는 집으로 진입했다. 그 순간 커다란 굉음과 함께 2층 주택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집 안에 들어갔던 대원들을 포함해 7명이 그대로 매몰됐다. 인근에 있던 대원 3명은 파편에 맞아 쓰러졌다.

이에 소방대원 250여 명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필사적으로 구조에 나섰다. 3월이었지만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에도 대원들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대원은 50분 만에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원 6명이 잔해 어딘가에 있었다. 다른 대원들이 건물 지하 보일러실로 대피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서둘러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잔해 아래는 유독가스로 가득했고, 산소통 사용 가능 시간 25분이 지나면 위험한 상황이었다. 대원들은 구멍을 뚫기로 했고 마침내 지하실로 향하는 통로를 확보했다.

구조대는 직접 좁은 구멍으로 몸을 넣어 지하로 진입했고, 매몰 3시간 23분 만에 두 번째 동료를 구했답니다.

다음날 오전 7시 57분 기준으로 소방대원 모두 구조에 성공했다. 그러나 동료들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이어졌다.

대원들은 눈물을 삼키며 집주인 아들을 찾기 위해 수색을 계속했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집주인 아들이 이미 불길이 치솟기 전 현장을 빠져나갔다는 경악스러운 소식을 듣게 됐다.

알고 보니 집주인 아들은 집에 방화를 저지르고 그대로 친척집으로 도망을 친 것. 충격적인 소식에 소방대원들은 차마 일어설 수조차 없었습니다.

사건 이후 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현장에 있던 대원들은 동료를 잃은 비극적인 사건이 있고 바로 다음 날에도 출동을 해야 했다. 한국의 경우 소방관 1명 당 주민 약 2천 명을 담당해야 하는 심각한 인력난이었다. 미국의 경우 소방관 1명이 208명을 담당하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였답니다.

대원들은 24시간 맞교대로 격일 근무할 만큼 열악한 근무 조건에서 일하고 있었다.

또한, 소방대원들이 입는 방화복은 알고 보니 방수복이었다. 방수복으로 지급한 이유는 방수복이 방화복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입는 옷이 방수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소방대원들은 그동안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만으로 위험한 화재 현장에 뛰어들었던 것이랍니다.


그 밖에도 국군 병원, 경찰 병원 등은 있었지만 소방 병원은 없었던 것, 소방대원들의 치료비 문제 등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마저도 홍제동 화재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야 밝혀진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 충격을 안겼다.

“소방관의 처우 개선은 홍제동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라는 말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소방 인력은 2014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21년 기준 1인당 담당 주민수는 806명(전국)을 기록했다. 하지만 구조·구급대원 1인당 담당 주민수는 2803.9명(전국)으로 갈 길이 멀다. 또한, 2014년 기준 응답자 39%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알코올 장애, 수면 장애 등 한 가지 이상의 정신 질환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날 현장에 있던 한 소방관은 어깨에 난 화상 자국 위에 “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라는 문신을 남겼다. 당시 구조되어 생존한 소방관은 “다시 그 상황이 온대도 들어가야죠”라는 말을 남겨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한편 11월 9일은 소방의 날로, 국민에게 화재에 대한 이해와 경각심을 높이고 화재를 예방하게 하여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답니다.

- 해당사건은???

2001년 3월 4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의 다세대주택에서 집주인의 아들 최 씨(당시 32세)의 방화로 소방관 6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

홍제동 화재·속초 산불·대구 지하철 참사..잊지 말아야 할 사건 재조명 ('유퀴즈')
- 2020. 11. 12

'유퀴즈'에서 홍제동 화재사건, 강원도 동해안 산불, 대구 지하철 참사를 재조명했다.

11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서는 'First In, Last Out' 특집으로 꾸며진 가운데 홍제동 화재사건, 강원도 동해안 산불, 대구 지하철 참사를 재조명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답니다.

이날 신미애 소방관은 지난 2001년 홍제동 화재사건을 언급했고, "2001년도에 홍제동 사건이 있었다. 비번 날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빨리 복귀하라고 연락이 오더라. 가면서도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는데 사무실 도착하니까 분위기가 싸하더라"라며 털어놨다.

이어 신미애 소방관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저희 직원 여섯 분이 들어갔는데 매몰이 된 거다. 그 여섯 분이 다 돌아가셨다. 제가 몇 년 안 되다 보니까 '과자 사주세요 주임님', '커피 사주세요'라고 했던 분인데 돌아가셨더라"라며 덧붙였습니다.

더 나아가 신미애 소방관은 "사고 당일 사무실에서 구조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리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을 때도 너무 힘들었는데 단체 장례식을 할 때도 너무 힘들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박치우 소방관은 속초소방서 119 구조대에서 근무하며 지난 2019년 4월 발생한 강원도 동해안 산불 진압에 투입됐다고 밝혔다. 박치우 소방관은 "주간 근무가 끝나고 퇴근을 한 상황이었다. 밥을 먹으려고 한 순간 비상소집 명령이 와서 바로 소방서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라며 기억을 떠올렸답니다.

박치우 소방관은 "바람이 엄청 불었다. 차가 휘청휘청할 정도로 가는 길 내내 도로 옆이 다 타고 있었다. 방화복이 되게 두툼하다. 불에 잘 타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청대터널을 통과하는 그 순간에 온통 시뻘건 광경이 펼쳐지더라. 투입된 대원 모두가 방어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것 같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유재석은 "전국에서 강원도로 몰려든 소방차의 행렬이 보도가 됐다. 그걸 보면서 많이 뭉클했다"라며 말했고,박치우 소방관은 "저도 그 당시에 대응 3단계라고 하는데 '대응 3단계가 됐으니까 전국에서 지원이 올 거다'라는 소식만 무전으로 접했다. 정말 든든했다. '빨리 끌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저도 모르게 울컥하게 되더라"라며 공감했습니다.

유재석은 "강원도 동해안 산불 이후 마음가짐이 달라진 게 있냐"라며 질문했고, 박치우 소방관은 "기본적으로 가진 마음가짐에 변함은 없었던 거 같다. 항상 사람을 많이 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저희가 입고 있는 이 옷의 무게인 것 같기도 하다"라며 사명감을 드러냈답니다.

마지막으로 유재석은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에서 가장 먼저 현장에 진입한 김명배 소방관을 만났다. 김명배 소방관은 "비번이라 직장 동료와 테니스를 치러 가는 상황이었다. 비상 연락을 받고 근무처에서 개인 장비를 챙겨서 모인 직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현장으로 갔다"라며 회상했다.


김명배 소방위는 "현장에서는 누구 한 사람이라도 먼저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라고 해서 대원 한 명과 같이 들어갔다"라며 덧붙였답니다.

김명배 소방관은 "당일만 현장에 10여 회 들락날락했다. 지하 1층만 가도 잘 못 찾는데 지하 3층이니까 말도 못한다. 1079호 전동차에서 화재가 났는데 대다수의 사망자는 1080호에서 발생했다"라며 밝혔다. 김명배 소방위는 사고 현장에 대한 기억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작진은 화재 상황에 대한 대처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고, 그 결과 192명의 시민들이 안타깝게 희생됐다는 사실을 재조명했습니다.

화재에도 태풍에도 몸 던진 영웅들..순직 소방관 520인의 기록
- 2022. 9. 28

2001년 3월 4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비좁은 주택가 골목으로 소방대원들이 호스를 들고 불이 난 이층집으로 뛰어갔다.

불길을 잡고 7명을 대피시켰지만 "집에 우리 아들이 있다"는 집주인의 구조 요청에 대원들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답니다.

하지만 주택이 순식간에 내려앉았고 대원들은 그 안에 갇혔다. 결국 박동규, 김철홍, 박상옥, 김기석, 장석찬, 박준우 등 6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당시 대원들이 입었던 것은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이었다. 홍제동 참사로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가 알려져 방수복 대신 방화복이 지급되고 근무체계가 개선됐습니다.

태풍 '차바'가 몰아친 2016년 10월 5일 울산에서 집중호우로 강변에 고립된 차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정희국 소방관과 강기봉 소방관이 출동했답니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물은 순식간에 차올랐다. 두 사람은 강물에 휩쓸렸는데 살아남은 건 정희국 소방관뿐이었고 강기봉 소방관은 하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후배를 떠나보낸 정희국 소방관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3년 뒤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의 사물함을 열어보니 강기봉 대원의 제복이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후 수색작업이 이어지던 2014년 7월 14일.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현장 지원 활동을 마치고 강릉으로 돌아가던 강원소방본부 특수구조단 헬기가 광주의 아파트 옆 인도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정성철, 박인돈, 안병국, 신영룡, 이은교 등 5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학교와 아파트를 피하려고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아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방청이 순직 소방공무원 520인을 기린 추모백서 '기억을 향한 기록'을 28일 발간했다.

소방 역사 이래 최초로 발간된 이 추모백서는 300쪽 분량이랍니다.

최초로 순직한 소방관은 1935년 경성소방서 광화문 분서에 근무하던 고제덕 소방관이다. 그는 목재상 화재 현장에서 지붕이 무너져 순직했다.

올해도 지난 1월 6일 평택 물류냉동창고 신축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이형석·박수동·조우찬 소방관이 순직했다.

추모백서 1부는 순직자들의 마지막 출동 현장의 기록과 안타까운 사연, 유가족과 동료 소방관의 애도 글, 역사 속에 잊혀가는 한국전쟁 전사 소방관과 일제 강점기 소방관의 이야기를 담았다.

2부는 소방공무원 묘역이 지정되기까지 역사와 묘역 소개, 순직소방관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전국의 추모 시설 현황, 추모사업 등이 실려있다.

3부에는 520명의 순직소방관 현황을 기록했습니다.

이 책자는 순직소방관 유가족과 소방관서, 국가보훈처, 인사혁신처, 유족 지원사업에 도움을 주는 민간기업 등에 배포하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순직소방관 사이버 추모관에도 게재했습니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