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김묘성 기자 프로필 남편 결혼 몸매 아나운서 나이 키 논란

uihjet35 2024. 1. 24. 02:06

- 아래는 김묘성의 학력 대학교 나이 등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기사입니다. 결혼 남편 여부에 대해서는 미공개네요.

서울여대 후배들을 위해 “언니들이 돌아왔다!”
-2014-10-23

서울여자대학교(총장 전혜정)에 23일, 특별한 이들이 찾아왔다. 서울여대를 언론 분야에서 다양하게 일하고 있는 동문들이 후배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기회를 갖고자 모교를 찾은 것이랍니다.


‘언니들이 돌아왔다’라는 이름으로 열린 오늘 토크콘서트에는 ‘서울여자대학교 미디어 종사자 동문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언론계 종사 동문들 중 7명이 참여했다.

이날 후배들을 위해 모교를 찾은 이들은 박혜령 KBS PD(농촌과학과 78학번), 박정숙 방송인(경영학과 89학번), 조수진 전 극동방송 PD(문헌정보학과 91학번), 구은영 MBC 아나운서(경영학과 00학번), 김혜민 YTN 라디오 PD(언론영상학전공 00학번), 김묘성 Y Star 기자(사회사업학과 02학번), 유현정 ESS 프로덕션 PD(언론영상학전공 03학번) 등이랍니다.

이들은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감회에 젖어 대학 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학창 시절 이야기와 꿈을 찾고 이루기 위한 노력 등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참석한 재학생들은 대학 생활, 진로 결정 및 준비, 사회생활, 언론계 현장의 이야기 등 궁금한 점을 물어보며 함께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한편 이번 토크콘서트는 22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되고 있는 취업박람회의 일환으로 진행됐습니다.

"대선에서 왜 졌냐하면"
- 2023.04.10

이재명 대통령 후보 경선캠프 영상팀장 / 본선캠프 현안대응 3팀장 김묘성 씨

2000년대 중반 DMB 아나운서 시절부터 유튜브가 대세가 된 지금까지, 계속해서 무언가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하는 일을 해오신 것 같습니다. 매체 환경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그에 맞춰 변신하시기도 했답니다.


2005년에 지상파DMB 아나운서를 맡으며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2007년부터 케이블TV로 진출해 경제전문채널에서 기자 겸 앵커로 활약했던 것입니다. 한 4년 정도 일했고요. 2011년부터는 연예 전문기자로 일했습니다. 아마 이 시절의 저를 기억해 주시는 분 들이 많으실 거예요. 2017년 초까지는 매체에 소속돼서 일했고 이후 2년 정도는 소속 없이 프리랜서로 일했습니다. 방송 출연도 활발하게 했었고, ‘잡스러운연애’, ‘수다맨들’ 등 팟캐스트에도 출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18년 말부터는 경기도 홍보미디어담당관실 영상미디어팀장으로 일했고, 지난해 이재명 후보 대선캠프에서도 일했던 상황입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기자님 활동기간이 매체 환경 급변동기와 겹치는 것 같아요. TV, 라디오, 신문 등 올드미디어 영향력이 줄어들고 뉴미디어 영향력은 늘어났던 기간입니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수많은 매체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했고요. 기자님은 시기마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변화에 잘 적응하신 것 같은데, 시기마다 변화를 정말로 예측하신 것인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답을 알고 있으면 쉽지만, 당연히 정답을 알 수는 없으니까요. 텔레비전 시청률도, 신문 열독률도 떨어지는 상황. 대중에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사람은 그때그때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 그 시기 ‘뉴’미디어라는 말뜻 그대로 새롭게 만들어진 매체는 다 모두 ‘스타트 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잘 적응하고 변화하려고 애를 쓰기는 했지만 예측하고 움직였던 것은 아닙니다.


매체 환경이 빠르게 바뀌니, 필요한 역량도 달라지고 또 일하시면서 “이게 더 필요하구나”하는 것들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처음 지상파DMB 아나운서로 일하다가 잠깐 더 작은 매체로 옮긴 적도 있었는데, “뉴스를 직접 쓰고 직접 그 내용을 전달할 수 있어야겠다”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써 주는 내용을 읽기만 해서는 제대로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고요. 종편 등장 전, 경제 전문 케이블 채널로 옮기게 된 것도, 기자 역량도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연예 전문 매체로 옮기게 된 것은 어떤 이유였나요? 물론 연예 기자 시절에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지기도 하셨던 것이지만요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가장 큰 영향을 줬습니다. 그 경제매체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매체였는데요. 노 전 대통령 죽음 후 선배들이 보인 행태 때문입니다. 그 사건 전까지는 (보수 매체 구성원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으면, 인격적으로나 일 처리 능력에서나 존경할 만한 훌륭한 선배들이었는데. 그 선배들이 당시 분향하는 시민들 보고 “세상 참 좋아졌어”라며 혀를 끌끌 차는 거예요. 정치 성향을 떠나 직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 슬픔에 빠져 분향하는 것을 보며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할까요? 정치적 성향의 차이도 있었고 회사 내부 사정도 좀 시끄럽기도 했고요. 이런 내면적, 외부적 갈등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경계가 많이 사라져서 이상한 것도 없지만,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각 영역이 확실한 상황에서 연예 기자로의 변신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왜 ‘연예’여야 정말로 했는가?

주변 지인들이 연예부 기자를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도 오고 연락도 오고 했어요. 그러면서 “아예 정치랑 아무 상관 없는 데로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연예부 기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당시 나이가 20대 후반이셨는데, 왜 서른이면 압박감이 있잖아요. 우리 사회 특성상 그 압박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두드러질 것 같답니다.

그때 아니면 결정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아직 20대 때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나이 들수록 어려워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 그러면서 결정하게 됐지요. 그렇게 연예 전문 매체에서 활동하게 되고 5~6년 정도 연예 전문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기자님을 처음 뵌 것도 그때였습니다. 이게 또 영역이 달라지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을 텐데 적응이 참 빨랐던 것 같답니다.

연예기자라고 하면 아무래도 원래 가지고 계신 고정관념이 있으셨을 텐데 외부에서 보는 시선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속한 매체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제가 더 바쁘게 취재해야 기사가 나오는 구조였어요. 1주일이나 2주일 정도 뻗치기 해서 기사 한 건 내기도 하고…. 저는 열애설 기사를 거의 쓰지 않았어요. 정말 사건 사고에 관한 취재를 발로 뛰며 했습니다. 주로 법원, 경찰서가 취재현장이었고요.. 그래서 기자로서는 되게 즐거웠습니다. 보람도 있고요. 연예 전문기자 생활 후반부에는 소속 매체 없이 프리랜서로 활동한 적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당시는 힘들었는데 돌아보면 그것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지상파와 더불어서, 종편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요... 이게 이를테면 ‘저자직강’ 같은 연예계 이슈 소개를 하신 셈이군요. 그런데 보통 다른 분들은 취재만 하거나, 전달만 하는 데 기자님은 두 가지 영역을 모두 경험하셨으니…. 기자 김묘성으로서 취재한 내용을 아나운서 김묘성이 소개하는…. 그러한 경험들이 지금 유튜브 방송 진행도 자연스럽게 하실 수 있게 하게 했답니다.

예 맞습니다. 지금도 TV 방송 출연을 하고 있는데, 방송은 사실 기본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거든요. 과거 앵커로 매일 방송을 진행하면서 기본기를 체득할 수 있었고, 거기에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썼던 경험은 제 인생에 더할 나위 없는 플러스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