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를 열창한 이동기는 1954년 충북 음성 출생으로 1979년 데뷔했으며, 1982년 ‘논개’로 스타덤에 올랐다. 2003년 ‘분홍립스틱’으로 데뷔한 가수 이정민이 그의 딸이랍니다.
역사는 한세대가 공유하는 횡적 문화의 순간을 종적인 시간 축 위에 쌓아가는 궤적이다. 이 순간순간은 때때로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되고, 가락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감성으로 남는다. 1982년 이건우의 노랫말에 이동기가 멜로디를 넣은 노래 ‘논개’가 바로 이런 유의 대표곡이다. 임진왜란 중 조선군이 참패한 제2차 진주성 전투와 관련한 서사를 담았다.
1592년 10월 왜군은 호남 곡창지대로 통하는 진주성을 공격하다가 진주목사 김시민에게 대패를 당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왜군은 1593년 6월 10만여명의 병력과 800여척의 선박을 동원해 경남 함안·반성·의령을 거쳐 진주성을 공격해왔다. 마침내는 철갑을 입고 사륜거·장갑차·철추(鐵鎚)로 성문을 뚫기에 이르렀으며 노도와 같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최후까지 혈투하던 김천일 장군이 아들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졌고, 경상우병사 최경회 장군도 남강에 투신해 순국했답니다.
진주성을 함락한 왜군은 촉석루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이때 주씨 성을 가진 1574년 전라도 장수현 출생의 여인이 나섰다. 부친이 사망한 후 장수현감 최경회에게 의탁하다가 정실부인이 사망한 후 그의 처가 됐던 여인, 바로 논개다.
논개는 승리감에 도취돼 있던 일본군 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남강변 ‘의암(義巖·논개바위)’으로 유인해 그를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들어 그를 익사시켰다. 논개가 투신한 바위는 원래 위험하다는 뜻의 ‘위암(危巖)’으로 불렸으나 이후 ‘의로운’ 바위로 명명됐답니다.
가수 이동기, 32년만에 자작곡 '약국집 딸' 발표 - 2019. 11. 26.
자작곡 ‘논개’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 이동기가 32년 만에 신곡을 발매했습니다.
이동기는 “최근 우연히 고향 충북 음성에서 아주 어릴 때 친했던 친구를 만났다”며 “감격에 겨워 둘이서 주고받은 이야기 그대로를 ‘약국집 딸’ 노래 가사로 작곡을 했다”고 전했답니다.
이번 신곡 앨범에는 ‘약국집 딸’과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총 2곡을 담았습니다.
이동기는 “80년 초 전성기 때 하루에 매일 1500여 통씩 팬 레터를 보내주시던 옛 팬분들이 신곡을 들어보시고 기뻐해 주고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아침마당' 가수 이동기 "히트곡 '논개' 일본서 떼돈 벌었다" - 2018. 6. 5.
가수 이동기가 히트곡 '논개'로 일본 진출을 한 사연을 밝혔습니다.
5일 방송된 KBS1 '아침마당'의 '화요초대석'에서는 가수 이동기가 출연했다.
이날 이동기는 "젊을 때는 노래 하나만 히트되면 떼부자가 되고 인기가 영원히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 노래가 건전가요이기 때문에 밤무대 행사에 불러주지 않았다. 그래서 돈을 못 벌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87년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 가서 공연하자는 말에 일본 갔는데 대박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일본에서 많이 불렀다"며 "일본에서 4년간 왔다갔다하며 노래 불렀다"고 밝혔다.
해당 노래가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냐는 질문에 이동기는 "개사도 안 하고 4년간 노래를 했는데 일본 사람들이 좋아했다"고 말했다
가수 이동기가 출연해 개그맨 김학래와의 인연에 대해 언급했답니다.
이동기는 "군 제대하고 서울에 노래하러 명동에 갔다. 하루에 500원 받고 한 달에 15,000원 받고 노래했다. 당시 김학래는 쳐다볼 수도 없는 스타였다"고 운을 뗐다. 그는 "밤업소에서 처음 만났다. 나이가 들어서 스타가 된 줄 알고 형이라고 불렀다. 알고 보니 동갑이었고 자연스럽게 친구가 돼서 41년이 됐다"고 말했다.
이에 김학래는 "오래됐다. 저 친구는 한결같다. 인상을 보면 꼭 범죄라도 저지를 것 같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동기는 "김학래야말로 한결같다. 과거에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는데 제가 인기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똑같이 대해줬다"고 전해 훈훈함을 자아냈답니다.
이날 방송에서 이동기는 자신의 히트곡 '논개'에 대해 "히트할 것이라 생각도 안 했고, 버리는 곡이었다"며 "'논개'도 심혈을 기울였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 라디오 PD가 '논개'를 다른 PD들에게 소개해주고 틀어주다 보니 히트곡이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동기는 1983년 '논개'로 큰 인기를 얻은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이에 이동기는 "노래는 가끔 하다가 1년에 한 번 정도 나왔는데 토크쇼는 처음"이라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