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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김승연 회장 부인 아내 서영민 나이 여사 별세,가계도 아들
uihjet35
2022. 8. 9. 15:43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부인인 서영민 여사가 안타깝게도 별세했습니다.
2022년 8월 9일 재계에 따르면 서영민 여사는 지난 미국에 있는 한 병원에서 암으로 투병하던 중 별세했다. 김승연 회장과 아들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가 미국으로 갔으며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서정화 전 내무부 장관의 딸인 서영민 여사는 1982년 김승연 회장과 결혼했으며, 배두진 전 국회의장의 부인 허숙자 여사가 두 사람을 중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 당시 서영민 여사는 서울대 약대 3학년생이었고, 결혼 뒤에도 학업을 이어가 수석 졸업했답니다.
서영민 여사의 친가는 유력가문이다. 조부는 이승만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고 서상환 장관이다. 부친인 서정화 전 장관은 중앙정보부 차장과 민정당·신한국당·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고, 서정신 전 대검찰청 차장과 형제랍니다.
한편 서영민 여사와 김승연 회장은 세 아들을 뒀다. 후계자로 꼽히는 장남 김동관은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2010년 한화에 차장으로 입사했다. 한화솔라원 이사와 기획실장 등을 거쳐 2020년 9월 28일 한화솔루션 전략담당 부사장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 김승연의 생애와 과거
1952년 2월 7일 한화그룹의 창업주 김종희와 강태영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종희는 생전에 “남자는 술도 좀 마시고, 담배도 피워 보며 단맛 쓴맛 다 맛봐야 한다.”며 “어차피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쓸 데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호연지기를 키울 것을 강조했다고 한답니다.

1981년 김종희가 지병인 당뇨병 합병증과 신부전증 등으로 고생하다 유언 없이 갑작스럽게 사망함에 따라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한국화약그룹을 이끌게 되어 재계서열 6위 초거대 기업으로 키워낸 것으로 유명하답니다.
남동생 김호연과 10여년간 상속 다툼을 벌인 끝에, 김호연이 빙그레를 가지고 독립했다. 빙그레 이글스가 한화 이글스로 바뀐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B2C가 아닌 한국화약보다야 식품회사인 빙그레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광고 효과가 있기 때문에 빙그레 이름을 붙였던 것. 비슷한 사례로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경우가 있답니다.
누나 김영혜도 1996년 제일화재를 이끌고 독립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제일화재의 사정이 나빠지면서 다시 한화그룹에서 인수합병했답니다.
장인은 내무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서정화 국민의힘 상임고문. 큰아버지 김종철도 1980년대 한국국민당 총재를 지낸 정치인이며, 작은아버지 김종식도 정치인이랍니다.
김승연 회장을 비롯한 범한화가는 꽤 독실한 모태 성공회 신자들이다. 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어머니와 아내도 독실한 신자다. 국내에는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보다 인지도가 다소 밀리는 성공회에서 가장 유명한 신자일 듯. 소년 시절엔 성공회 성당에서 복사 활동을 했으며, 1997년에는 성공회대학교 이사장이었고, 성공회대에 일부 대금을 면제해 주는 형태로 대학본부 건물을 지어주어서, 건물 이름이 승연관이 되었다. 한때 건물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답니다
- 김승연에 대한 여러 긍정적 평가
- 의리왕
언론에서 의리 있는 남자라고 자주 다룬다. 화끈한 성격으로 유명해서 고객에 대한 신용과 의리를 강조한다. 한화그룹의 가족적인 분위기나 그에 따른 회장님의 여러 일화를 봐도 그렇다. 이는 부전자전이다. 이리역 폭발사고 때 아버지 김종희는 자기 재산 90억 전부(지금 물가가치로 무려 5,000억원 이상)를 피해자와 이재민들을 위하여 사용했답니다.

지금의 90억과 1977년 당시 90억의 가치가 천지차이임과 이후에 벌어진 다른 대형사고에서 사건 책임자들이 사과만 하고 물질적인 지원을 해준 적이 거의 없음을 생각하면 대단히 양심적인 케이스다. 참고로 1978년에 완공된 저 유명한 은마아파트의 분양가가 당시 돈으로 2,000만원이 조금 넘었다. 지금 시세로 비교해 보면 100배는 차이가 나나 대략 계산해도 50배 정도라고 생각하면 편하답니다.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서울 프라자호텔 전면 리모델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호텔 문을 3개월 동안 닫게 하자, 개장공사가 끝날 때까지 쿨하게 모든 직원(600여명)에게 60일 혹은 90일이나 유급휴가를 줬다. 또한 IMF 외환위기 당시 한화에너지를 현대정유에 넘길 때 돈을 20~30억원 덜 받더라도 100% 고용승계를 반드시 지키라는 조건으로 매각협상을 하기도 했답니다.
경향신문이 부도위기에 처했을 때 자금지원도 하고, 진보적인 학회를 후원하기도 했으며, 진보지(예를 들어 월간 말)에 꾸준히 그룹 광고를 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과학과 신학 등에서 진보적인 학풍으로 유명한 대학인 성공회대를 후원하고 있고 재정지원 뿐만아니라 성공회대 학생들을 갤러리아 등 계열사에 인턴으로 고용해주고 정식 채용까지도 해준다. 이사장까지 지냈답니다.

아무리 성공회 신자라지만 재벌 총수가 진보 성향이 강한 대학, 더 정확하게는 학교 경영권이나 금전적 혜택을 기대하지 않고 이런 기부를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는 아니다. 성공회 교리가 워낙 국내 개신교나 사회 전반의 시선에서 리버럴해 보이고 사회적으로 추태로 비난받는 일에 거의 끼지 않는 덕이 클뿐, 대부분의 성공회 신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다. 따라서 매우 보수적인 신자들도 많을 뿐더러 극우나 '태극기부대' 성향인 신자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과 그 일가도 성공회 신앙을 갖고 있답니다.
1995년 뉴욕 미주본부로 발령을 보냈지만 교통사고로 하반신 척수마비가 되어 제대로 일을 못하게 된 이모 직원을 임원으로 승진시키고 계속 근무하도록 미국 지사로 보내주었다. 또한 징역 기간이 끝나자 그 동안 심려끼쳐 죄송하다며 한화 전 직원에게 보너스를 얹어주기도 했다. 최말단 갤러리아백화점 캐셔가 받은 돈이 무려 50만원이랍니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북한의 잠수한 경로를 한국에 유출해줘 간첩 혐의로 처벌받은 재미동포 로버트 김은 감옥도 가고 한국 정부도 선을 그어서 어려운 상태였는데 딱히 인연도 없던 김승연이 애국 동포라고 생활비를 대줘서 어려움을 넘겼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