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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 후손 아들 자손 아내 고향 나이 형제 묘 유배지

uihjet35 2021. 5. 4. 10:38

조선시대 영조와 아울러서, 정조, 순조 때 살았던 성리학자, 실학자로 수산학자, 해양학자, 생물학자입니다. 정약용과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형으로 호는 손암이었으며, 자는 천전이랍니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안드레아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성리학자이자 실학자인 이익의 학설을 배웠으며 이익의 제자인 권철신(암브로시오) 아래에서 학문을 배웠답니다. 1783년 사마시에 합격한 뒤에, 진사에 올라갔고 1790년 증광문과에 응시해 병과로 급제하였답니다.

 

이후에는 전적, 병조좌랑의 관직을 역임하게 되었답니다. 1798년 정조의 명령을 받아 영남인물고를 편찬하는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답니다. 친척인 천주교도 이벽(세례자 요한)과 아울러서, 이승훈(베드로) 등과 교류했으나 이후 동생 정약용과 함께 천주교를 멀리하였답니다.

이후에 지난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신지도에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다시 흑산도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지에서 서당을 운영하며 섬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다가 유배 생활 16년만에 1816년 경에는 우이도에서 사망했습니다. 묘지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 성지에 있답니다.

한편, 아들로는 외아들 정학초가 있었는데 혼인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자식도 없이 병으로 요절했습니다. 정약전은 물론이고 평소 조카 정학초의 재능을 높이 샀는데, 자신의 학문적인 후계로 삼고자 했던 정약용도 크게 슬퍼하였답니다. 정학초의 죽음으로 인해서 후사 문제를 두고 정약용과 정약전이 편지로 토론한 적이 있답니다. 며느리가 자식도 없이 청상과부로 사는 모습을 가엾게 여긴 정약전과 정약전의 부인은 정약전 형제의 외가 친척인 정학기의 아들을 정학초의 양자로 삼아서 후사를 있게 되기를 원했답니다.